[화정평화재단 통일세미나]통일준비, 누가 무엇을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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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8일 03시 00분


“北 무력도발 앞에 기존 ‘상생공영’ 통일방안은 공허”

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화정평화재단과 한반도선진화재단이 ‘통일준비: 누가, 무엇을, 어떻게’를 주제로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이 민족 통일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화정평화재단과 한반도선진화재단이 ‘통일준비: 누가, 무엇을, 어떻게’를 주제로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이 민족 통일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과 한반도선진화재단은 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통일준비: 누가, 무엇을, 어떻게’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통일부가 후원한 이날 행사에 참석한 국내외 전문가들은 통일을 이루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축사를 통해 “그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관계를 관리함에 따라 통일논의가 지체됐다”고 지적한 뒤 “이제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집’을 짓는다는 각오로 튼튼한 안보 위에 건강한 남북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건전한 통일준비 논의는 한반도의 미래는 물론 남북관계 변화의 방향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3대 세습 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연평도에 포격 도발을 가하는 등 대외적 호전성을 키우고 있는 만큼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고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적극적인 통일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의 대북정책은 물론이고 지도자와 엘리트의 자세 전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통일방안에 핵과 급변사태 넣어야

이조원 중앙대 교수는 “과거의 통일방안은 통일이라는 ‘현상 타파’보다는 한반도 평화라는 ‘현상 유지’에 치중하고 있으며 북한 핵문제와 급변사태로 인한 급진적인 통일 가능성을 논외로 하는 등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1994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민간 학자들이 제시한 통일 방안들이 모두 화해와 협력, 남북연합에 이은 합의에 의한 통일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북한이 사실상의 핵 보유 상태에 이른 현실과 3대 세습 체제 확립 과정의 내부적 불안정 요인을 정부의 통일정책과 통일방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핵 보유와 대남 도발 가능성이 확인된 만큼 북한 핵을 현실적으로 억지할 수 있는 (남한의) 핵능력 보유를 통일정책에 과감히 하나의 의제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북한의 급변사태에 따른 갑작스러운 통일에 대비해 중국이 홍콩과 마카오에 적용하고 있는 ‘1국 양제’ 통일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국 양제’ 통일방안은 정치적으로는 통일하되 행정과 경제는 분리하는 ‘제3의 통일방식’으로 독일식 흡수통일에 따른 비용부담을 줄이고 북한체제의 안정적 전환을 이룰 수 있다는 설명이다.

○ 대북정책 리모델링 시작해야

이명박 정부의 공식적인 대북정책과 통일구상도 도마에 올랐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의 공식 대북정책인 ‘상생·공영’과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3대 공동체 통일 구상’ 등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핵을 사실상 보유하고 대남 무력 도발에 나선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의 ‘화해 협력’ 정책, 노무현 정부의 ‘평화 번영’ 정책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현 정부의 ‘상생 공영’ 대북정책이 효용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최 연구위원은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 민족공동체 회복이라는 3대 공동체 통일 구상도 통일의 분야별 목적은 될 수 있으나 통일을 이룰 수단은 아니다”라며 “현 정부가 기존 ‘분단 관리’에서 벗어난 ‘통일 지향’의 담론을 형성했지만 구체적인 정책으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종환 명지대 교수는 “북한을 변화시키고 주민들의 마음을 살 수 있도록 대북정책의 기조와 우선순위, 대화 방식을 모두 바꾸라”고 주문했다.

○ 지도자와 국민의 결단과 용기 필요


이조원 교수는 “최고지도자가 통찰력과 비전을 바탕으로 통일 논의를 결집하고 국민의 합의를 얻어 나가야 한다”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북진통일론’이 국론을 통합하고 한미동맹을 강화시킨 것을 사례로 들었다.

김학준 동아일보 고문은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잘살아보세’가 아닌 ‘통일해보세’라는 구호를 시대정신으로 고착시킬 수 있는 용기와 통찰력을 가진 창조적 소수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도 “정부와 국민이 함께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국가를 창조하는 ‘선진화 통일’을 이루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궁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대내적 준비와 아울러 대외적 통일외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의 통일을 우려하는 중국과 미국 등 강대국을 안심시키도록 통일된 한국이 경제공동체와 안보공동체의 틀 속에서 중국의 경제발전과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략적 자세로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보진영을 대표해 참석한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정부와 보수적 여론 속에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고 통일이 가까이 왔다는 희망적 사고가 퍼지고 있지만 중국의 지원 속에 북한이 체제를 오래 유지하면서 남한에 대한 공세를 지속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獨전문가들이 말하는 통일경험-조언 ▼
北주민에 南이 도와줄거라는 신호 보내야

독일 전문가들은 20년 전 독일 통일 과정에서 경제적 준비의 부족으로 통일비용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든 것을 아쉬워하며 “가급적 큰 규모의 통일기금을 마련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또 언제, 어떤 방식으로 통일이 이뤄질지 예상하기 어려운 만큼 평상시에 마음의 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스울리히 자이트 주한 독일대사는 “통일을 예상하고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독일의 경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3주 뒤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가 동서독 협력에 관한 ‘10가지 계획’을 발표했는데 몇 달 뒤에 보니 이 중 실현된 것이 별로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현재의 북한 동향을 분석하고 예의주시한다면 대북 정책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북한 3대 세습의 성공 여부, 불안정한 북한 경제의 붕괴 여부 등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렉산더 피셔 독일경제연구소 사무총장은 “1990년 독일 통일 직전까지 누구도 통일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난 20년간 동독 재건에 2조1000억 유로(약 3168조 원)라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었다”며 “지금도 동서독 간의 균형 잡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의 경우 통일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과 함께 권력구조의 변화가 있었는데 한국의 경우 통일과 재건에 적어도 한 세대가 걸린다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을 위해 △평소 만반의 준비를 할 것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모아둘 것 △1조 달러(약 1131조 원) 정도는 통일기금으로 보유할 것 △통일 기회는 한 번밖에 안 올지 모른다는 점을 생각할 것 △통일 뒤 10년 정도는 북한에 민주주의를 너무 강조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대표는 “독일 통일은 갑자기 이뤄졌지만 서독의 꾸준한 노력으로 미국과 소련, 프랑스 등 주변 국가들의 지지를 얻어낸 것이 큰 힘이 됐다”며 외교적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으며, 도와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 정부-민간 역할분담은 ▼
정부 급변사태 대비, 민간은 교류 확대를


전문가들은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통일추진위원회’를 설립해 상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 차원에서는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 갑자기 통일 기회가 올 것에 충분히 대비해야 하며, 민간 차원에서도 이념논쟁보다는 현실적인 통일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실장은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북한 체제의 몰락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징후일 수 있다”며 “김정은에게 단기간에 권력을 넘겨주려는 김정일의 조급성 때문에 북한이 대내외적으로 무리수를 둘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2의 연평도 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기회가 있을 때 통일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며 “민관 합동으로 통일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전 국가적 차원에서 통일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이 실장은 “통일업무의 효율적 운영과 정부 내 관심과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청와대에 통일특보나 통일수석비서관직을 신설하는 것을 검토해볼 수 있다”며 통일·안보교육 강화, 통일재원 조달, 탈북자·해외동포 전략 수립 등도 정부가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궁극적으로 통일이 이뤄지려면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와 사회문화의 통합까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므로 국가가 혼자서 할 수는 없다”며 “통일문제에서 민간부문, 특히 시민사회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지금까지 통일문제 이야기만 나오면 항상 좌우로 갈라져 이념적으로 싸웠고 현실적으로 뭘 준비할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탈북자 2만 명도 우리 사회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만큼 민간 부문에서의 인식 전환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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