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만남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도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두 사람 간에 어떤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지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다이 국무위원이 김 위원장에게 △중국이 제안한 6자회담 수석대표 간 긴급 협의에 대한 호응을 요청하고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도발에 따라 격화되고 있는 한반도 긴장 상황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다이 위원이 ‘한국도 긴장 격화를 바라지 않고 있다.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않으면 된다’는 취지의 말을 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으로선 북한의 핵무장에 따른 주변국 핵 도미노 현상으로 동북아 정세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잇단 도발로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고 있는 처지에서 중국은 북한에 전향적인 긴장완화 노력을 촉구했을 수도 있다. 앞서 다이 국무위원은 7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세계는 이미 지구촌이 됐고 어느 국가도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중국 역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대치와 대립이 아닌 평화발전이 불가피하다”며 외교적 해법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는 다이 국무위원과 김 위원장의 회동에서 구체적인 합의가 도출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중국 신화통신이 ‘김 위원장과 다이 위원이 중요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중국이 제안한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 참가 등 당면한 이슈에 대한 구체적인 공감대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도 긴장 완화에 동의한다는 수준의 원론적인 의견을 피력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중국의 외교 태도로 볼 때 ‘공감대 형성’이란 구체적이기보다는 한반도 긴장 완화나 대화의 지속, 6자회담의 유용성에 대해 양국이 원칙적인 공감대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는 “북한은 중국의 급작스러운 계획에 발 벗고 따라주는 체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한과 중국 매체는 이날 두 사람의 만남을 전하면서 ‘6자회담 수석대표 간 긴급 협의’에 대해 언급하지도 않았다. 당초 지난달 27, 28일 방한 직후로 예상됐던 다이 위원의 방북 시기가 미뤄진 것도 북-중 간에 방북을 둘러싼 물밑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해석도 있다.
북한은 이번 기회를 통해 우라늄 농축에 대한 중국의 양해를 구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강석주 내각 부총리가 김 위원장과 다이 위원의 면담에 배석한 것으로 미뤄 북한은 지난달 12일 시그프리드 헤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에게 대규모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여준 배경 등을 설명하고 ‘평화적 핵 개발’이라고 강변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김 위원장은 다이 위원에게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도 남측의 도발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적극 변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이날 ‘서기국 상보’를 내고 “연평도 포격사건은 미국과 남조선 호전광들에 의해 면밀히 꾸며지고 의도적으로 감행된 또 하나의 엄중한 반공화국(반북) 군사도발”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중국은 다이 국무위원과 김 위원장의 회동 결과를 14∼17일 중국을 방문하는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 국무부 부장관 일행과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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