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5시 35분 경기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해발 155m 애기봉에서는 성탄 트리 점등식이 열렸다. 2004년 제2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군사분계선(MDL) 지역의 선전활동을 중지하기로 합의하면서 등탑(燈塔) 점화가 중단된 후 처음 열린 행사다.
성탄 트리는 휴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만들어졌고 1971년 현재의 높이 30m 등탑이 설치됐다. 최근 대북 심리전 재개 방침을 세운 정부는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등탑에 전구를 설치해 성탄 트리를 만들겠다고 하자 이를 허용했다.
입구에서 두 번의 신분확인 절차를 거쳐 도착한 애기봉에서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했다. 불과 2, 3km 전방에 북한군의 초소와 선전용 마을, 오가는 사람들을 망원경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 시작 한 시간 전인 오후 4시부터 애기봉 전망대 일대는 취재진과 행사를 주최한 여의도순복음 교회 신자 등 400여 명이 몰려 붐볐다. NHK, 알자지라 방송, AP, 로이터 통신 등 외신 기자들도 취재경쟁을 벌였다.
점등식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와 김문수 경기지사, 한나라당 나경원 차명진 의원, 이호연 해병 2사단장 등이 참석했다. 비상사태에 대비해 행사를 서둘러 진행하면서 점등식은 예정보다 20분 빨리 시작됐다.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김 지사, 이 목사, 나 의원 등이 버튼을 눌러 트리에 불을 밝혔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등 네 가지 색 발광다이오드(LED) 전구 10만 개가 환한 빛을 발했다.
점등식을 마친 뒤에도 성가대가 노래를 이어가자 군인들은 취재진과 신자들에게 서둘러 아래쪽 주차장으로 내려가도록 권했다. 성가는 중단됐고 점등식은 5분여 만에 끝났다.
성가대로 참여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신자 우성저 씨(경기 부천시)는 “남북의 평화를 기원하며 오랜만에 열리는 점등식이어서 꼭 참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애기봉 일대에는 북한군의 도발에 대비해 해병대원 80여 명이 대기했고 구급차 소방차 레이더 등도 배치됐다. 야간에 북한군의 동향을 관측하기 위한 열상감시장비(TOD)와 적외선 관측장비도 투입됐다. 애기봉 전방의 북한군 부대도 평상시보다 많은 병력이 정찰을 강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군 당국은 애기봉 등탑의 불을 밝히기 전까지 가림막을 설치해 북한군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내년 4월 초파일에도 등탑에 점등하느냐’는 질문에 “(불교계에서) 요청을 하면 허용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김 장관은 또 “여러 사안이 이번 연평도 사격훈련 수준으로 준비가 돼 있다”며 “(북한이 포격을 가할 경우) 포격 원점을 제거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해발 155m의 애기봉 정상에 세워진 등탑의 불빛은 25km 떨어진 북한 개성 시내에서도 육안으로 보인다. 판문점 부근의 북한군 민병대대에서 부소대장으로 복무하다 1979년 탈북한 안찬일 한나라당 북한인권 및 탈북자위원회 부위원장(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등탑의 화려한 불빛은 북한 군인과 주민들에게 남한의 발전상을 느끼고 동경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된다”며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 주민들에게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1971년 세워진 등탑의 불이 2004년 남북 간 합의로 꺼진 이유도 이런 대북 심리전 효과 때문이다. 그해 6월 열린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북측 대표가 “애기봉 철탑이 우리 쪽을 가장 자극한다”며 강력하게 소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점등식 하루 전인 20일 북한 노동신문은 “대형 전광판에 의한 심리모략전이 새로운 무장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망동”이라고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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