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출근?” 질문에 “잔인하지 않아요?”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가 10일 오후 5시 40분경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연수원 별관 사무실을 나가려다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고 있다. 그는 ‘내일도 출근하느냐’는 질문에 잠시 침묵을 지키다 씁쓸한 표정으로 “여러분 좀 잔인하지 않아요” 라고 말한 뒤 승용차에 올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민주당의 사퇴 압박을 받아온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가 이르면 11일 자진 사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나라당 지도부까지 10일 정 내정자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리고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데 따른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 내정자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최고위원 전원의 의견을 수렴했다. 안상수 대표는 회의 말미에 “정 내정자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국민의 뜻을 따르고 대통령과 정부를 위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고 안형환 대변인이 전했다. 이에 앞서 공개된 최고위원회의 첫머리에도 정 내정자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홍준표 서병수 최고위원 등이 우회적으로 ‘정 내정자 불가론’을 피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이런 결정에 대한 보고를 받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은 이날 오후 긴급회의를 갖고 대책을 숙의한 뒤 강한 유감 입장을 정리했다. 청와대는 한나라당의 결정 사항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홍상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브리핑에서 “대통령실장과 수석비서관이 의견을 나눈 결과 ‘이런 사안에 관해 여당도 얼마든지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집권 여당으로서 이번에 보여준 절차와 방식에 대해서는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홍 수석은 “당의 의견을 수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청와대가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정 내정자의 거취 자체보다는 한나라당의 의사결정 절차와 방식에 대해 강하게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여당 지도부가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 없이 이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나타낸 것은 처음이어서 이번 파동이 집권 4년차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원희룡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에 이어 오후에도 청와대 측과 접촉하며 향후 수습대책을 놓고 의견을 나눴지만 절충점을 찾지는 못했다. 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청와대는 당의 의사 결정 방식을 수긍할 수 없다고 한다”며 “청와대는 당이 급하게 의사결정을 한 배경에 의구심을 갖고 있어 상당기간 당청관계는 긴장상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정 내정자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연수원 별관 사무실에서 퇴근하며 ‘거취 표명을 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중에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청문회까지 가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렇게까지 멀리 나갈 필요는 없고, 조금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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