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정부가 물가 대책에 9개 부처를 총동원한 것은 5% 경제성장 목표에 다소 차질이 빚어지더라도 ‘물가부터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연초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급등 조짐을 보인 물가에 정부의 경제정책 목표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정부의 경제정책 무게 중심이 ‘경제 성장’에서 ‘물가 안정’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 이명박 대통령은 3일 신년연설을 통해 올해 경제운영의 목표로 5%대의 경제성장률 달성과 3% 안팎의 물가 안정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전방위 물가 대책이 의지만큼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 물가 대책 ‘다걸기’의 의미와 배경
경제학자들은 기준금리 인상을 ‘소 잡는 칼’에 비유하곤 한다. 그만큼 강도가 세고 한번 휘두르면 효과도 크다는 뜻이다. 특히 기준금리 인상은 환율 하락(원화가치 절상)과 경상수지 악화로 이어져 경제성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연초부터 예상을 깬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것은 그만큼 물가에 대한 정부와 한은의 위기감이 깊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와 대파의 가격은 12일 현재 전년 대비 102.9%, 111.5% 급등했다. 사과(75.8%)와 배(58.0%), 고등어(35.9%)를 포함한 다른 농수산물도 기상악화 영향으로 오름세다. 더구나 지난해 하반기 전 세계를 휩쓸었던 국제 곡물가격과 국제유가 초강세가 2∼7개월의 시차를 두고 한반도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돼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눌려 있던 가격인상 심리와 소비회복세가 겹쳐지면서 물가여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물가 불안이 진정되지 않으면 경제 안정은 물론이고 서민경제 회복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윤종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1월 물가상승률이 정부 예상보다 높은 3%대 후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당초 올해 경제정책의 초점을 경제성장과 물가·고용에 균일하게 뒀지만 이번에는 물가안정을 먼저 확고히 하고 경기와 고용상황을 감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은 역시 이날 기준금리 인상 결정 직후 내놓은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앞으로 통화정책은 물가안정 기조가 ‘확고히’ 유지될 수 있도록 운용한다”며 ‘확고히’라는 문구를 추가해 물가 안정을 위한 강한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 전방위 물가 압박에 ‘풍선 효과’ 우려
정부가 이날 발표한 ‘서민물가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에서 재정부를 중심으로 지식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경제부처는 물론이고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사회 부처들까지 동원한 것도 물가상승 억제의 고삐를 바짝 당기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특히 정부는 부처별로 소관 물가를 얼마나 제대로 관리했는지를 향후 업무 평가에 반영할 방침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가공식품,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 등록금과 학원비, 행안부는 지방 공공요금 등 부처별로 ‘잡아야 할 물가’를 구체적으로 지정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주요 부처가 자기 소관의 물가는 각각 책임지고 확실히 잡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이라며 “정부가 올해 상반기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그만큼 성장보다 물가 안정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발표됐거나 시행 중인 정책이 적지 않은 데다 정부의 직접적인 ‘가격 통제’라는 비판이 나올 만큼 전방위적인 ‘압박 카드’가 대거 동원되면서 만만치 않은 후유증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정부는 학원비 인상을 막기 위해 집중 단속에 나서는 한편 이달 시도교육청에 ‘유치원비 안정화 점검단’을 구성해 유치원 연합회에 유치원비 인상 억제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또 공산품은 업체들과 가격 인상 사전점검 협조 채널을 구성하고 가격 인상이 예상되는 품목에 대해서는 유통구조 전반에 대한 현장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처럼 정부가 단순한 가격 동향 점검을 넘어 현장 감시와 같은 실질적인 압박 카드를 꺼내들면서 단기적인 가격인상 통제 효과는 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억눌렸던 가격인상 요인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풍선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생활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과 서비스요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물가대책이 단기 대책은 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물가 상승이 장기화되면 중장기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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