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 선생 52년만에 간첩 누명 벗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1일 03시 00분


진보당 사건, 대법 재심서 무죄… 대법 ‘사법살인’ 잘못 첫 인정
딸 조호정 씨 기쁨의 눈물

이승만 정부 당시 평화통일을 강령으로 내건 진보당을 창당했다가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사법(司法)살인’의 희생자 죽산 조봉암 선생(1898∼1959·사진)이 52년 만에 열린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이용훈 대법원장, 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20일 이 사건 재심에서 간첩 및 국가변란 목적 단체 결성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진보당은 사회적 민주주의 방식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부작용이나 모순을 완화하려 했을 뿐 사유재산제, 시장경제 체제의 틀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았으므로 헌법질서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진보당이 내세운 평화통일론을 북한의 위장된 평화통일론을 따라한 것으로 볼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조봉암 선생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양이섭 씨를 통해 북한의 돈을 받고 간첩행위를 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유일한 직접증거인 양 씨의 진술은 일반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육군 특무부대에 영장 없이 연행돼 장기간 감금된 상태에서 나온 것이어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조봉암 선생이 권총과 실탄을 불법 소지했다는 혐의(군정법령 제5호 위반)는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날 판결문을 낭독한 이 대법원장은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건국에 참여했고 국회의원, 국회부의장을 지내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며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농지개혁 등 우리나라 경제체제의 기반을 다진 정치인이었지만 잘못된 판결로 사형이 집행됐다. 재심 판결로 뒤늦게나마 그 잘못을 바로잡는다”며 과거 사법부의 과오를 인정했다.

무죄 판결이 나자 대법정 방청석에 앉아 있던 유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조봉암 선생의 딸 조호정 씨(83)는 재판이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아침까지도 불안했는데 이렇게 좋은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이제 내가 죽어도 편하게 아버지를 뵐 수 있겠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조 씨는 이어 “50여 년 동안 비워둔 부친의 비문에 이제야 (글을) 새겨 넣을 수 있게 됐다”며 “정적(政敵)을 이렇게 없애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에 있는 조봉암 선생의 묘비에는 앞에 ‘죽산조봉암선생지묘’라고만 쓰여 있고 뒤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

간첩으로 몰려 희생됐던 죽산 조봉암 선생이 5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죽산 선생의 딸 조호정 여사가 환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 여사는 이 자리에서 “이제야 부친의 비문에 글을 새겨 넣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간첩으로 몰려 희생됐던 죽산 조봉암 선생이 5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죽산 선생의 딸 조호정 여사가 환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 여사는 이 자리에서 “이제야 부친의 비문에 글을 새겨 넣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조봉암 선생은 1958년 1월 진보당이 주창한 평화통일론의 이적성 유무에 대한 경찰 수사 과정에서 다른 진보당 간부들과 함께 구속됐다. 그는 이후 남북을 오가며 물자교역을 하던 양 씨로부터 북한의 지령과 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2월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조 선생은 “양 씨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불법 감금·고문이 있었다”며 재심을 신청했지만 대법원은 같은 해 7월 30일 이를 기각했고 17시간 만인 이튿날 전격적으로 사형이 집행됐다. 이는 건국 이후 첫 번째 사법살인으로 알려져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9월 재심을 통한 명예회복을 국가에 권고했고 유족은 이를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다. 검찰은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부정적 관점과 당사자에 대한 동정적 시각을 이유로 엄격한 요건과 기준에 따라 운용되는 재심 제도의 예외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며 재심 개시를 반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대법원의 이날 판결은 이 대법원장이 2005년 9월 취임하면서 과거사 진상 규명 의지를 밝힌 데 따른 자기반성의 성격이 짙다. 이 대법원장은 2008년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권위주의 체제에서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해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과거사 사건 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사과한 바 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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