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만 여명 작전]배 고장내고 逆항해 들켜 뭇매 궁지몰린 해적 “모두 선장때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4일 03시 00분


해적들 모포들춰 찾아내 4발 보복총격…
‘아덴만 영웅’ 석해균 선장과 선원들의 기지

대한민국 자존심 구출한 최영함 승조원들 한 치의 실수도 하지 않은 완벽한 작전 수행으로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모두 무사히 구출한 청해부대 최영함의 조영주
함장(가운데)과 승조원들. 이 사진은 올해 초 함상에서 연 신년하례회 때 찍은 것으로, 포털 다음에 개설된 청해부대 최영함
공식카페 ‘푸른가족’에 올려져 있다. 인터넷 카페 ‘푸른가족’ 캡처
대한민국 자존심 구출한 최영함 승조원들 한 치의 실수도 하지 않은 완벽한 작전 수행으로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모두 무사히 구출한 청해부대 최영함의 조영주 함장(가운데)과 승조원들. 이 사진은 올해 초 함상에서 연 신년하례회 때 찍은 것으로, 포털 다음에 개설된 청해부대 최영함 공식카페 ‘푸른가족’에 올려져 있다. 인터넷 카페 ‘푸른가족’ 캡처
“모든 게 선장 때문이다.”

탕! 탕! 탕! 탕! 어둠 속으로 4발의 총성과 함께 불꽃이 번쩍였다.

21일 오전 5시경(현지 시간) 삼호주얼리호 상공에 최영함의 링스헬기가 나타나 기관총 사격을 시작하자 구출작전이 개시됐음을 직감한 해적들은 석해균 선장을 찾기 시작했다.

선교에 모여 있던 한국인 선원들은 모포를 뒤집어쓴 채 벌벌 떨고 있었다. 해가 뜨려면 아직 2시간이나 남아 식별이 쉽지 않자 해적들은 일일이 모포를 걷어내며 선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이윽고 석 선장이 발견됐다. 이미 해적들의 수차례 구타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한 해적이 알아듣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으며 가차 없이 소총의 방아쇠를 4차례 당겼다. 이 중 총알 3발이 석 선장의 복부 정면과 엉덩이, 옆구리에 맞았다. 석 선장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석 선장에게 총을 쏜 해적은 작전 과정에서 생포됐다. 그를 발견한 선원들은 “저놈이 가장 악질이다. 저놈만큼은 여기서 죽이고 가지 왜 살려서 데려가느냐”고 특수전 요원들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석 선장은 ‘아덴 만 여명 작전’의 1등 공신이었다. 석 선장은 다양한 기지를 발휘하며 소말리아 해적들의 발을 묶어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 근거지로 가기 전에 구출작전을 펼칠 수 있게 한 주인공이었다.

석 선장은 선박 속도를 늦추기 위해 해적 몰래 “엔진오일에 물을 타라”고 지시했다. 선장의 지시를 받은 정만기 기관장은 해적의 감시를 피해 물을 탔다. 이때부터 선박은 정상적인 운항이 어려워졌다.

18일 청해부대가 1차 구출작전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엔진오일에 물이 들어간 탓에 삼호주얼리호는 자주 멈추는가 하면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에 해적들은 근처를 지나는 몽골 선적 상선을 빼앗아 배를 갈아타려고 했고, 이를 놓치지 않은 청해부대는 1차 구출작전을 시도했다.

비록 이 작전은 부상자가 생겨 중단됐지만 적의 선박과 AK소총 3정을 빼앗아 전력을 상당 부분 무력화했다. 군 관계자는 “21일 작전이 비교적 수월하게 성공한 요인 중 하나는 1차 작전으로 적의 전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차 작전 다음 날 오전에는 삼호주얼리호가 갑자기 소말리아의 반대 방향인 동북쪽으로 이동해 군 당국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것도 석 선장의 작품이었다. 뒤늦게 이를 알아챈 해적들은 석 선장을 무자비하게 구타했고, 석 선장은 결국 왼쪽 다리가 골절되고 오른쪽 어깨가 탈구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구타와 총격으로 부상을 입은 석 선장은 오만 살랄라항의 병원으로 이송돼 서너 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한때 혈소판 수치가 낮아져 청해부대 군의관 정재호 중위 등 장병 3명이 헌혈을 하기도 했다. 석 선장은 총상으로 대퇴부와 다리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감염이 우려돼 추가 수술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왼쪽 팔에 골절상도 입어 깁스를 했다.
“UDT 지휘관은 뒤에 서지 않는다” 앞장서 작전

안병주 소령
안병주 소령
22일 밤 병원에 다녀온 최종현 주오만 대사는 “석 선장은 잠들어 있는 상태였으며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고 말했다. 담당 의사는 최 대사에게 “석 선장은 ‘크리티컬한(위태로운)’ 상황은 아니다. 이송됐을 때보다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1등 기관사 손재호 씨는 청해부대의 구출작전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손 씨는 해적들의 감시가 잠시 소홀해진 틈을 타 총알이 날아다니는 교전 상황을 뚫고 기관실로 이동해 엔진을 정지시켰다. 배가 흔들리지 않자 특수전 요원들은 정확한 저격이 가능해졌다.

1, 2차에 걸쳐 진행한 구출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선봉에 선 해군 특수전 부대(UDT/SEAL) 요원들의 불굴의 용기, 피땀 어린 훈련을 통해 갈고닦은 실력과 함께 철저한 작전 준비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1차 구출작전 때 총탄에 튄 철판 파편에 맞은 팀장 안병주 소령은 특수전여단 폭발물처리대장, 작전사 특수전 담당, 대테러 담당을 지낸 특수전 분야의 베테랑이다. 그는 위험한 임무에는 무조건 선임자가 앞장서는 특수전 부대의 관행에 따라 고속단정 앞에서 팀을 지휘하다 부상했다. 21일 2차 구출작전에서도 선봉은 다친 안 소령의 바로 다음 선임자인 김규환 대위였다.

함께 다친 김원인 상사는 해상 대테러 과정을 차석으로 수료하고 특수임무대대 저격수로 발탁된 최고의 ‘스나이퍼’이고, 강준 하사는 검문·검색팀의 일원으로 최일선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정예요원이었다.

해군 관계자는 “팀장이 다치자 남은 대원들 사이에선 ‘반드시 작전을 성공시키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오히려 이것이 남은 대원들의 투지를 불사르게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청해부대는 이번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16일 출동 이후 매일 수차례 구출작전을 위한 모의훈련을 벌였다. 부산에 정박한 삼호해운 소속 삼호주얼리호와 동일한 선박의 내부 구조를 국내에서 화상으로 전달받아 연습에 활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국내에서는 구출작전에 알아둬야 할 선박의 특징을 면밀히 분석해 청해부대로 보냈다. 대원과 인질 가운데 단 1명의 희생도 없이 완벽하게 성공한 구출작전 뒤에는 이런 치밀함이 있었다.

특수전 부대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불가능은 없다’는 모토 아래 군에서 가장 긴 24주의 지옥훈련을 거쳐 프로들을 육성한다. UDT 체조와 구보, 수십 km 전투수영 등을 통해 체력을 기른다. 전문과정에선 잠수와 폭파, 정찰, 특전전술, 정보수집 등을 습득한다. 실전 배치 이후에도 월 10회, 연간 3000발 이상의 사격훈련을 실시하며, 매월 공격팀과의 야외훈련, 매 분기 고공침투 등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천안함 실종 장병을 구조하다가 순직한 한주호 준위가 바로 이들의 교관이었다. 한 준위 역시 청해부대 1진에 최고령 대원으로 합류해 2009년 8월 바하마 선박 노토스스캔호에 접근하는 해적선 퇴치 작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동영상=청해부대 여명작전 동영상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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