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모든 걸 독학으로 이뤘다… 갑판원 → 3·2·1급 항해사 → 19년만에 ‘캡틴’ 꿈까지
“무사히 돌아오길…” 24일 경남 밀양시 무안면 마흘리 자택에서 만난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의 아버지 석록식 씨(83·왼쪽)와 어머니 손양자 씨(79)가 본보 인터뷰 중 총상을 입은 아들을 걱정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밀양=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58)은 바닥에서 정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대형선박을 이끄는 선장은 대학에서 관련학과를 전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석 선장은 독학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정상(선장)까지 올랐다.
그는 밀양실업고를 졸업한 후 해군생활을 하면서 마도로스를 동경했다. 제대 후 1976년 처음으로 조그마한 연안화물선을 탔다. 1년간 아무 직책도 없이 시키는 일만 하는 가장 밑바닥 선원생활이었다. 1년 만에 첫 휴가를 얻어 집에 온 그는 동생들에게 “꼭 선장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1977년 5월 한국해양수산연수원(해기연수원)에 갑판원으로 정식 선원등록을 한 뒤 급유선과 화물선 등을 번갈아 탔다.
해기사(海技士) 자격증을 따기 위해 일이 없는 시간에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5년간 선원생활을 해야 3급 항해사 면허취득 요건이 주어지기 때문에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꿈을 키웠다. 중고교 시절 자신이 세운 계획을 실천하는 데 한 치의 오차도 없었던 그는 5년 뒤인 1982년 8월 3급 항해사 자격증을 땄다. 이때 그는 부인 최진희 씨(59)에게 결혼 후 처음으로 “고맙다”는 말과 함께 포옹을 했다.
해군 부사관 시절의 석 선장 21일 청해부대의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 과정에서 해적들의 총격으로 총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석해균 선장이 해군 부사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모습. 사진 제공 석록식 씨 이어 1984년 2급 항해사, 1988년에는 1급 항해사 자격을 잇달아 취득했다. 그는 1, 2년간 배를 탄 뒤 국내에 들어오면 항해 기간에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꼭 한 단계씩 올라가는 면허를 취득했다. 모든 게 독학이었다. 3∼6개월의 휴식기간에는 부산에 있는 해기사학원을 다니면서 다음 시험을 준비했다. 선원생활에 필수인 영어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1급 항해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에는 남들이 싫어하는 화학물질운반선을 주로 탔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가야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자신에게 멍에처럼 따라다니던 가난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도 이유다.
그는 7년 동안 경력을 쌓은 뒤 1995년 6월 드디어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캡틴(선장)’으로 진급했다. 선장으로 첫 키를 잡은 배는 대우해운 소속 2만 t급 오션페랄호였다. 가족 모임에서 석 선장은 늘 이때를 떠올리며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자라는 부분은 노력해서 채우면 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선장 자격을 취득한 뒤에는 대형 민간 상선을 19척이나 이끌었다. 34년간 바다생활을 하면서 탄 대형선박은 총 33척에 이른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서 실시하는 선박안전 및 보안교육도 12차례나 받아 노하우를 축적했다. 해운업계에서는 그의 이런 경력이 이번 ‘아덴 만 여명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기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 채효석 경영지원팀장(56)은 “독학으로 1급 상선항해사 자격증을 따고 선장에까지 오르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2009년 말 현재 3668명에 이르는 국내 1급 상선항해사 중에서도 석 선장 같은 인물은 극히 드물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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