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오일머니를 유치하기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하 이슬람채권법)이 기독교계의 반발에 부닥치면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불교 천주교에 이어 현 정권에 우호적이라는 기독교까지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면서 여권 내부에서는 종교계와의 소통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18일 개회한 2월 임시국회에서 이슬람채권법이 조속히 처리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길자연 신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비롯한 교단 대표들은 17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이슬람채권법 찬성 의원에 대한 낙선운동 가능성을 언급하며 강한 반대 의사를 전했다. 국회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 소속 의원들의 태도도 점차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18일 “이슬람채권법은 중동지역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새로운 길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으나 상황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불교 천주교와는 이미 4대강 사업 등으로 자주 충돌해 여야 이상으로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8년 현 정부 출범 직후 국토해양부의 대중교통정보시스템에 사찰이 누락되면서 본격화된 여권과 불교계의 갈등은 4대강 사업 논란으로 이어졌고, 지난해 말 정부 예산안에서 템플스테이 예산이 삭감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조계종은 이후 한나라당과 청와대 관계자들의 사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지난달 10일에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조계종 스님 300여 명이 ‘민주주의 회복과 민족문화 수호를 위한 1080배’를 열고 “공정해야 할 정부가 사회적 논란거리들을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로 관철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천주교에서는 4대강 사업으로 촉발된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가 내부 갈등으로 확산되기까지 했다. 지난해 말 정진석 추기경이 “주교단에서 4대강 사업에 자연 파괴 위험이 보인다고 했지만 반대한다는 소리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데 대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일부 원로 사제들이 정 추기경의 용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요즘 매주 월요일 저녁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4대강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기도회를 열고 있다.
여권에서는 종교계가 이례적으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권 내부의 갈등관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자성론도 나온다.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는 “기독교를 제외하고 불교 천주교의 주요 지도자와 주기적으로 소통하는 중량급 인사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종교계 인사들은 이성권 대통령시민사회비서관이 주로 접촉하면서 주요 이슈를 조율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갈등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가장 빈번하게 충돌해 온 불교계와는 주호영 전 특임장관 외에 터놓고 소통할 메신저가 사실상 없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내년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종교계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게 중요한 만큼 당과 청와대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필요하면 (종교계와의 소통을 위한) 인력과 조직을 보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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