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범칙금 소득따라 차등부과”… ‘유리지갑’ 봉급생활자가 덤터기 쓸 우려

  • Array
  • 입력 2011년 2월 22일 03시 00분


MB 또 강조하고 與도 적극 검토 나섰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20일 교통위반 범칙금을 소득과 연계해 부과하는 방안에 대해 추진 의지를 밝혔지만 정작 관련 법안을 정비해야 할 국회에서는 “취지를 살리면 공정사회에 부합하지만 잘못하면 서민이나 봉급생활자들에게 불리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최고위원과의 만찬에서 “생계형 픽업 차량들이 교통법규를 위반해서 내는 벌금과 벤츠 승용차가 위반해서 내는 벌금이 같은데 그게 공정사회 기준에 맞겠느냐”며 “국무회의에서 두 번이나 이야기했는데 안 됐다”고 말했다.

이재오 특임장관도 “스웨덴은 1억 원이 넘는 범칙금을 내는 이도 있다”고 거들었다. 심재철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만찬 이후 기자들과 만나 “적극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2009년 국무회의에서도 이 내용을 제안한 바 있다.

이 제도는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주로 북유럽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수벌금제도’다. 벌금을 ‘1일 평균 순수입’에 따라 정하는 제도를 뜻한다. 이렇게 되면 소득에 따라 벌금이 달라진다. 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2009년 소득과 연계해 교통범칙금을 차등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려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문제점을 지적해 법안 발의를 포기했다.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도 소득에 따라 범칙금을 감면하는 법안을 제출하려 했으나 국회로부터 소득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기가 힘들다는 답변을 받고 보류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09년 당시 강 의원에게 회신한 검토보고서에서 “소득이 투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면 수입이 분명히 드러나는 봉급생활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일수벌금형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와 달리 벌금형 산정에 기초가 되는 정확한 소득자료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영국도 1992년 10월에 일수벌금제를 시행했다가 자력 조사가 불가능하고 빈곤층에게 오히려 많은 벌금이 부과되는 부작용이 나타나 시행 6개월 만에 중단했다.

제도 도입에 따른 업무 폭주도 걸림돌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국민 편의를 위해 20만 원 이하의 범칙금은 법원 대신 행정관청이 집행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전과도 남지 않는다. 그런데 북유럽에서처럼 일수벌금제도가 도입돼 20만 원이 넘는 고액의 벌금을 부과할 경우 법원이 범칙금을 직접 다루게 돼 법원의 업무 폭증이 예상된다. 국민들이 불편해할 수 있다.

경찰도 2009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소득과 연계한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 부과 방안을 검토했으나 이에 대한 법 개정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중단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무부도 범칙금을 차등 부과하는 법안 개정이 힘들다고 판단했다.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범칙금 통보 절차뿐 아니라 세금제도를 전반적으로 손봐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회 사무처 담당자는 “정치적인 결단이 있을 경우 가능할 수 있으나 대통령이 의도한 ‘공정사회’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부작용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대해 의원은 “소득이 낮은 서민의 범칙금 부담을 줄여주는 취지는 살릴 필요가 있다. 우선 투명하게 소득을 파악하는 등 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줄여 관련 법안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