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한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 일행이 묵고 있던 호텔에 침입해 노트북컴퓨터에 들어있는 정보를 수집하려다 도망친 괴한 3명이 국가정보원 직원인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사건은 양국 간 외교문제로 비화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21일 “사실상 국제적 망신을 당한 이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국정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책임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원 원장이 책임지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지만 이 대통령이 수용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아 보인다. 원 원장이 해온 남북관계 관련 작업을 중시하는 이 대통령이 경질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국정원 소식에 정통한 정부 관계자는 이날 “국정원이 금명간 문제를 일으킨 남성 2명과 여성 1명의 징계 등을 포함한 사건 처리 방침을 결정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는 3명에 대한 처리 결과를 인도네시아에 통보하고 유감 표명을 하는 선에서 외교적 수습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니콜라스 탄디 다멘 주한 인도네시아대사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를 찾아 한국 정부에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조병제 외교부 대변인은 “다멘 대사가 박해윤 남아시아태평양국장을 만나 이같이 요청했으며 정부는 사실관계가 확인되는 대로 알려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다멘 대사가 ‘왜 쓸모없는 정보를 가져가려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며 “양국 간 외교문제로 비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외교부는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이 관련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노트북은 특사단의 산업부 실무자 것으로 기밀이라고 할 만한 사항이 없다”고 보도했다고 전했다.
연간 8000여억 원의 국민 세금을 사용하는 국정원이 허술한 공작을 하다 발각돼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한 것에 대해 국정원 안팎에선 거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아마추어 수장이 오니 조직도 아마추어가 되는 것 아니냐”며 원 원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전직 국정원 간부는 “국정원이 사설 흥신소보다 못한 어설픈 짓을 저질렀다”고 개탄했다.
여당 일각에서도 원 원장 사퇴 주장이 나왔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국정원장은 이제 좀 물러났으면 한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의 수준이 참 부끄럽다”고 지적했다.
한편 16일 사건 발생 직후 국정원은 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특사단과 장시간 협상을 벌였으며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남대문경찰서 측에는 각별한 보안 유지를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21일에도 사실 확인을 거부한 채 부인에만 급급했다. 국정원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고만 말했다.
남대문경찰서는 인도네시아 특사단이 묵었던 호텔 내외부의 폐쇄회로(CC)TV를 통해 이들이 드나든 경로를 추적하는 한편으로 특사단 일행의 노트북에서 채취한 지문 8개에 대한 분석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호텔 내 CCTV의 각도와 화질 문제 등으로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당시 침입했던 사람들과 맞닥뜨린 호텔 직원을 불러 이들의 인상착의에 대해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정원이 국익을 위해 한 일이라면 처벌해도 실익이 없다”고 말해 국정원이 저질렀다면 처벌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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