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기독교계의 반대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슬람채권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않기로 방침을 선회하면서 이명박 정부에서 기독교의 정치적 파워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길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이 17일 이슬람채권법 찬성 의원에 대한 낙선운동 가능성을 공식 거론하자 5일 만에 태도를 바꿨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주요 현안에 대해 불교, 천주교와 수년째 갈등을 겪으면서도 별 태도 변화가 없던 한나라당이 이슬람채권법에 대한 기독교계의 반발을 접한 뒤 일주일도 안 돼 손을 든 이유는 뭘까. 정치권 안팎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기독교에 대한 애정과 교회의 여론 생산력을 그 배경으로 꼽는다.
○ ‘이명박 장로’가 힘의 배경
이 대통령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대형 교회인 소망교회 장로다. 요즘도 가끔 원로목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현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한다. 김장환 김진홍 목사 등은 2007년 대선 때 직·간접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 정부에서 기독교의 힘은 구체적인 정책 지원과는 별개로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애정과 관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청와대가 이슬람채권법을 강하게 추진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계가 반대할 수 있는 ‘기댈 언덕’이기도 하다.
이슬람채권법이 본보 보도(2월 14일자 A8면)로 논란이 되자 이 법안의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지난 일주일간 잇따라 기독교계 지도자를 접촉했다. 22일에는 임종룡 제1차관, 주영섭 세제실장 등 재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기독교계 인사들을 만나 이슬람채권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같은 날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2월 임시국회 내 처리가 어렵다고 선언했다. ▼ 목사들 사회이슈 자주 언급… 신자에 큰 영향력 ▼
정부의 한 관계자는 “주요 법안의 경우 이해 관계자에게 정부가 설명할 수 있으나 차관까지 나선 것은 일상적인 소통을 넘어 대단히 이례적이다. 그럼에도 실패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기 한두 차례 소망교회를 방문한 뒤 논란이 일자 직접 방문을 자제하고 청와대 안에서 케이블TV를 보며 ‘영상
예배’로 대체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대통령과 교회에 관련된 소문이 양산되고 있다. 올해 초에는 교회 내 폭력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은 소망교회의 한 관계자가 교계 신년 행사에서 ‘이 대통령이 (폭력사건으로 피해를 본) K 목사에게 위로전화를
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고 한다.
○ 설교의 힘
2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원동 왕성교회. 길자연 한기총 대표회장 겸 이 교회 담임목사는 설교 도중 교회를 가득 메운 교인들에게 이슬람채권법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기독교가 무조건 이슬람 채권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슬람 국가는 오일 머니를 무기로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겠다는
정책을 갖고 있다. 이들은 ‘경제 지하드(성전)’를 벌이고 있다.” 교인들은 설교 뒤 대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교회의 정치적 영향력은 동네마다 들어서 있는 중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한 여론 형성력에서 나온다. 서울 시내 한 대형 교회의 목사는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서울 및 수도권에서 1만∼2만 명의 등록 신자가 있는 대형 교회의 해당 지역구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담임목사가 특정 정치인에 대한 발언을 하면 신자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설교에 등장하는 정치·사회적 이슈들은 곧 그 교회의 여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불교와 천주교에도 이 같은 기능이 있지만 기독교에 비해서는 그 빈도와 강도가 약하다. 불교의 사찰은 법회를 열기는 하지만 조계사,
봉은사 등 일부 사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산속이나 교외에 있어 신도들이 자주 못 가고, 천주교는 종교의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만, 교회는 일요일을 포함해 설교가 포함된 행사가 자주 열린다.
한나라당에서 종교조직을 담당해 온 관계자는 “이슬람채권법이란 이름 자체가 나오지 않도록 입안 과정에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며 정부의 무신경을 지적하기도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