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국회행정안전위원회(위원장 안경률)가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전격 처리하자 국회 안팎의 시선이 따갑다. 청원경찰법 입법로비를 시도한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회원들로부터 불법 후원금을 받은 혐의로 행안위 소속 의원 6명(민주당 최규식 강기정 의원, 한나라당 권경석 유정현 조진형 의원,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이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행안위가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 근거를 스스로 없앴기 때문이다.
○ 31분 만에 소위 통과
4일 오후 2시 23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에서 정치자금개선소위(위원장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가 열렸다. 소위 위원 8명 중 6명이 참석했다. 소위는 계류 중인 5건의 정치자금법개정안 중 3건은 계속 논의하기로 하고 자유선진당 이명수 김용구 의원이 낸 법안을 바탕으로 대안을 만들어 31분 만에 처리하고 오후 2시 54분 산회했다.
이어 3시경 행안위(위원장 한나라당 안경률 의원)는 24명 중 22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어 소방방재청의 업무 보고를 받기에 앞서 소위를 통과한 법안을 처리했다. 소위를 거쳐 전체회의에서 통과되기까지는 겨우 30여 분이 걸렸다.
국회 행안위 관계자는 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3일 밤 회의 일정을 급히 잡았다”고 밝혔다. 행안위 소속 민주당 문학진 의원은 “나는 오늘 (전체)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야가 전부터 공감대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사실상 여야가 이 법안을 합의 처리했다는 것이다. 문 의원은 “청목회 수사는 무리한 수사라는 데 여야 의원들이 의견을 모은 결과”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회 안팎에선 행안위가 이 법안을 처리한다는 사실이 외부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며 사실상 ‘기습 처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왜 기습 처리?
이번 법안을 처리한 행안위 정치자금개선소위는 지난해 청목회의 입법로비 의혹 사건으로 행안위 의원들이 대거 수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설치됐다. 의원들이 “대체 어떻게 검찰이 이걸 문제 삼을 수 있느냐”며 정치자금법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기부를 제한하는 31조의 경우 조항 자체가 ‘국내외의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위헌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판사 재량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행안위원들은 법안소위에서 다룰 수도 있지만 법안소위에서 다루다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으로 판단해 따로 소위를 만든 것이다.
행안위 관계자는 “4일 통과된 3개 조항은 여러 가지 정치자금 관련 법안 중 여야 이견이 없고, 시민단체에서도 큰 문제 제기가 없는 것들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남은 법안은 정개특위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기회를 봐서 추가로 정치자금법을 의원들에게 유리하게 개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행안위는 지난해 12월 처리하려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고 포기한 단체·기업 후원 등을 허용하는 조항은 이번 법안 처리 과정에서 제외했다. 이에 대해 행안위 관계자는 “소위에서는 법인도 기부금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선진국들은 다 그렇게 한다. 그런데 국민의 시각이 아직 법인 허용까지는 어렵다는 의견이 있어서 이번에는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 어떻게 되나
이날 행안위를 통과한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법사위에서는 보통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의 체계·형식과 자구 심사만 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는 이 법안을 처리해 본회의로 넘기게 된다.
그러나 행안위의 전격 처리 사실이 알려진 후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어 법사위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만일 이 법안이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돼 발효된다면 청목회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의원들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진다. 새로운 법의 형이 가벼워지거나 처벌법규가 없어지는 등 형의 경중에 변화가 있을 때는 처벌이 가벼워진 법을 소급적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검찰 간부는 “개정안대로 정치자금법이 시행된다면 지금까지 현행 정치자금법으로 기소된 사람들은 법원에서 면소판결을 받게 되고 검찰도 앞으로 수사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이번 개정안은 기존 정치자금법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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