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7일 남북 적십자회담 실무접촉을 제의하며 귀순자 4명의 가족 대질을 제안하자 정부 당국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한 당국자는 “북한은 과거 표류 주민들의 귀순 사건에 거세게 반발할 때도 이런 요구까지는 하지 않았다”며 “어떻게든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겠다는 생각이 아니고서야 이런 공세까지 펴겠느냐”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북측의 요구에 절대 응하지 않을 방침이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망명자나 다름없는 귀순자들에게 어떤 고통도 줘선 안 되는 만큼 이들이 벗어나려 한 정권의 관계자들 앞으로 데려가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국제적으로도 그런 전례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부는 내심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주민 4명의 자유의사를 확인하는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는 의사를 북측에 전달하기는 했지만 그 구체적인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귀순자 대신 유엔군사령부 중립국감독위원회 관계자 등 제3자를 실무접촉에 참석시켜 4명의 귀순 의사를 확인시키는 방식이 거론되지만 북한이 수용할지는 알 수 없다. 이에 앞서 북한은 6일 유엔사가 4명의 귀순 의사를 확인했다고 북측에 통보한 데 대해 “비인도주의적 범죄행위를 비호 두둔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귀순자 가족 대질 제의는 고도의 ‘대남 인권 심리전’으로 풀이된다. 귀순자 가족을 동원해 남측이 ‘귀순 공작’으로 생이별을 만들었다는 여론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4명이 귀순 의사를 포기하지 않으면 가족이 고초를 당할 것이라는 협박의 의미도 담고 있다. 북한은 적십자 실무접촉 장소도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로 지정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측 주민이 남측 평화의 집으로 올 수 없고 남측에 있는 귀순자 4명도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중간의 중립지역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귀순자 4명 문제를 빌미로 적십자회담을 재개한 뒤 대북 식량지원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은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조건으로 남측에 쌀 50만 t, 비료 30만 t을 요구한 바 있다.
한편 북한의 체제유지 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가 이른바 ‘제2의 유성진 사건’을 만들기 위해 최근 개성공단 등 북한을 방문하는 남측 민간인들을 억류할 구실을 찾아내라는 지시를 비밀리에 하달했다고 대북 단파라디오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이 7일 전했다.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 씨는 2009년 3월 북한에 불법 억류됐다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136일 만에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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