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대기업 ‘하도급법’ 충돌… 제2의 초과이익공유제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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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1일 03시 00분


■ 법 개정안 국회 정무위 통과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싸고 재계의 반발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도 반대했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여야 합의로 전격적으로 도입되면서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뼈대로 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개정안은 11일 본회의에서도 큰 문제없이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청업체의 기술을 빼앗는 대기업에 대해 피해액의 3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그동안 시민단체들과 중소기업들이 요구해 왔던 제도다. 하지만 재계와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피해액만큼 배상하도록 하는 현행 민법체계에 어긋나는 데다 소송 남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해 왔다.

○ 징벌적 손해배상제


하청업체들은 10일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담은 하도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특히 중소기업들이 기술을 빼앗긴 뒤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막대한 소송비용 부담으로 도중에 포기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이 제도로 대기업들이 손해배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술 탈취를 꺼리게 될 것이라는 기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하도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22.1%가 대기업에 기술을 빼앗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기술 탈취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실제 김성수 서오텔레콤 대표는 2001년 응급상황 발생 시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면 긴급 메시지가 전달되는 기술을 개발했다가 대기업에 기술을 빼앗겨 소송 중이다. 김 대표가 A통신사에 기술 도입 의사를 타진하자 이 회사는 도입을 유보한 뒤 2004년 비슷한 서비스를 탑재한 휴대전화를 내놓았다. 김 대표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도입돼서 다행”이라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중소기업을 살리고, 우리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반면 대기업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된 데 불만이 크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대규모 가격 담합과 같은 심각한 불법행위에 대해 제한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기업 간의 계약을 제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또 ‘실손해 배상’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민법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데다 경쟁업체나 거래가 중단된 하청업체들이 보복을 위해 징벌적 소송제도를 남발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 신석훈 선임연구원은 “과징금과 형사소송에 더해 피해액의 3배까지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제재”라며 “소송 남발 등 이 제도로 파생될 부작용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생색내기’ 제도에 그칠 것으로 본다. 이상돈 중앙대 법학과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된 미국에서도 소송 남발과 같은 부작용으로 제도를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라며 “도입이 되더라도 거래가 중단된 하청업체 정도만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 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 및 단체 협의권


중소기업들은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만 도입되고 ‘단체 협의권’은 2년 뒤로 미뤄진 것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반응이다. 조정 신청권이 도입돼 하청업체 대신 중소기업협동조합이 대기업에 납품단가를 올리도록 요청하더라도 하청업체들이 직접 대기업과 협상을 해야 하는 만큼 별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견해다.

최근 원자재 값이 크게 올라 납품을 할수록 손해를 보고 있다는 한 골판지 업체 대표는 “조정 신청권이 주어져도 거래 단절을 각오하지 않고는 대기업을 상대로 강하게 단가 인상을 요구하기 어렵다”며 “조합이 대신 나서 협상하는 단체 협의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단체 협의권을 도입하는 것은 하청업체들이 납품단가를 담합할 수 있는 공식적인 카르텔 조직을 허용해 주는 ‘반(反)시장주의’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비슷한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모여 가격 인상 계획만 의논해도 가격담합으로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중소 하청업체들이 납품단가를 결정해 중소기업협동조합을 통해 협상하도록 하는 것은 지나친 특혜라는 것이다. 또 하청업체들이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하며 납품을 지연하는 단체행동에 나서면 경영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단체 협의권에 대해서는 가격담합 우려가 높은 만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학계에서는 2년 뒤 단체 협의권까지 도입되면 오히려 중소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은 바보가 아니다”며 “지나치게 대기업을 압박하면 하청 대신 계열사를 늘리거나 외국 업체와 계약을 맺어 중소기업의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 여야 ‘中企표심 잡기’ 경쟁… 공정위 반대에도 통과 ▼
정치권 왜 밀어붙이나

여야가 재계와 정부의 난색에도 강력한 제재조항을 담은 하도급법을 도입하기로 한 것은 4·27 재·보선과 내년 19대 총선 및 대선을 앞두고 중소기업의 표심(票心)을 잡으려는 양측의 이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각종 선거를 앞두고 성장보다는 물가 안정과 복지 관련 이슈가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주요 경제정책의 친(親)서민 친중소기업 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하도급법과 관련해 지역구 소재 중소기업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표를 의식한 여야 의원들은 모두 16건이나 되는 하도급법 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경쟁적으로 제출했다. 법안마다 지역구에 있는 중소기업의 요구사항을 반영하다 보니 법안심사소위에서 이를 조율하는 데 적지 않은 난항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대기업에 지나친 부담이며 반(反)시장적인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한나라당 서민정책특위위원장인 홍준표 최고위원이 9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과 오후에 회동해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때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기로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으나 공정위는 여당과의 마찰을 각오하고 즉각 이를 부인하는 자료까지 냈다.

이후 한나라당이 보인 대응은 여당이 얼마나 이 법안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날 저녁 자리에서 이 소식을 들은 홍 최고위원은 식사를 멈추고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백용호 정책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공정거래위원장이 찾아왔을 때 잠정 합의해 놓고 이를 뒤집는 자료를 낼 수 있느냐”며 두 실장에게 바로잡아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청와대도 여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김 위원장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에서 홍 최고위원은 “공정위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부와 청와대 모두 여당안을 받아들이기로 협의를 완료했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날 정무위의 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에선 여야가 이의 없이 이 법안을 처리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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