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이 30일 내우외환(內憂外患)에 빠졌다. 국내적으로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로 사실상 공황(恐慌)에 빠졌다. 같은 날 일본 정부는 모든 중학교 지리와 공민 교과서가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기술했다는 사실을 공개해 현 정부 외교를 궁지에 몰았다. 특히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는 지역적으로 한나라당을 떠받쳐온 영남권의 분열을 촉진해 당의 존립기반을 흔들고 있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마치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을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 흔들리는 지지 기반… ‘신공항이 제2의 세종시 되나’
한나라당 일각에선 “신공항 백지화가 당분간 김해공항의 유지를 의미하고 신공항의 대안으로 김해공항 확장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4·27 경남 김해을 보궐선거에는 불리할 것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당의 기반인 영남권이 신공항 논란으로 쪼개져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지지표의 이탈이 우려된다는 것이 지배적인 인식이다. 당 관계자들은 이미 지난해 6·2지방선거를 계기로 이탈이 시작된 부산·경남에 이어 대구·경북 지역의 반발이 심하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더욱이 한나라당 대구시당 위원장인 유승민 의원은 아예 “정치생명을 걸고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동남권 신공항을 공약으로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권 핵심 관계자도 “신공항 문제가 ‘영남권의 세종시’처럼 두고두고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중요한 싸움’이 있는 내년에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MB 정조준하려는 영남권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초부터 ‘정치논리는 안 된다’며 주요 국책사업에 대한 기준을 강조했다. 이번 신공항 백지화 결정에 대해 한 여권 관계자는 “남은 임기까지 주요 사업에 대해 이 같은 원칙대로 하겠다는 의지와 정치적 고집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여권 내부에서조차 “정치논리를 배제한다며 추진한 일이 오히려 더 큰 정치적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신공항 문제 역시 백지화라는 정공법을 택했지만 어디에서도 ‘잘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하게 된 상황이다.
한 부산 출신 의원은 “문제가 커지기 전에 밀양이든 가덕도든 결정을 내린 후 반대 측을 설득했어야 하는데 결정을 못 내리고 시간만 끌어 사태를 악화시켰다”며 청와대를 비판했다. 경북지역 한 의원은 “몇 년이 가도 비행기 한 번 안 타는 주민들까지 백지화에 흥분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모든 이해 당사자의 불만을 사게 됐다”고 지적했다. 여권 일각에선 대통령의 탈당까지 거론하는 여당 의원들의 목소리가 영남지역 주민들의 불만과 맞물릴 경우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청와대의 고민은 깊어가고…
청와대는 공약 이행이라는 신뢰의 문제와 국가 백년대계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 입장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민심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홍상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옆에서 지켜보기에 대통령은 자신이 한 공약을 지키지 못하고 국익 차원에서 이런 어려운 결정을 하면서 고뇌가 매우 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시적으로 비판을 받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경제성 없는 곳에 국가예산을 쓰지 않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국민들이 이해할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지만 영남권의 민심 이반을 추스르기 쉽지 않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청와대는 이에 따라 다음 달 4일 예정된 라디오연설을 활용하는 방안을 비롯해 대국민담화, 기자회견 등 여러 형식을 통해 대통령 생각을 직접 표출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 손학규 출마와 재·보선 완패 우려
강원도지사와 경남 김해을 보궐선거의 전망이 밝지 않은 터에 4·27 재·보선의 ‘마지막 보루’로 믿어온 경기 성남 분당을에 민주당 손 대표가 나서자 한나라당에서는 “이러다가 (전남 순천 국회의원 보선을 포함해) 0 대 4로 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분당을에서 패할 경우 ‘내년 총선에서도 이길 곳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당 지도부 교체와 대대적인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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