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선박납치’ 막았다]선교-시다델 문앞에 총알 3발… 해적들 성만 내다 돌아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2일 03시 00분


21일 오전 11시 40분(현지 시간·한국 시간 오후 6시 40분)경. 소말리아 해안에서 동쪽으로 740km 떨어진 인도양 한복판에 멈춰선 한진해운 소속 컨테이너선 한진텐진호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청해부대 특수전요원(UDT/SEAL) 2개 팀 16명이 재빨리 한진해운 소속 컨테이너선 한진텐진호에 올랐다. 이들은 능숙한 솜씨로 조타실을 장악했다. 1월 삼호주얼리호 구출을 위한 ‘아덴 만의 여명 작전’에 투입된 바로 그 요원들이었다.

소말리아 해적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선교에 어지럽게 남아 있는 맨발 자국들, 조작 흔적이 남은 통신장비들은 해적들이 텐진호를 납치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보여줬다. 특수전요원들은 선교에서 해적들이 쐈을 AK 소총 실탄 2발을 수거했다. 선원들이 피해 있었던 선원피난처(시타델) 문 앞에서도 실탄 1발을 발견했다. 해적들이 시타델까지 선원들을 쫓아왔다는 증거였다. 청해부대 최영함의 링스헬기가 관측했던 연기는 연돌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특수전요원들은 조타실에서 선내 방송을 했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격실들을 뒤지며 교신을 다시 시도하고 나서야 선원들의 무전을 들을 수 있었다. 텐진호의 시타델 안에는 주파수를 맞춰야 통신이 가능한 초단파(VHF) 무전기만 있었다. 텐진호는 다음 달 시타델 내에 위성전화기를 설치하려던 중에 해적의 공격을 받았다.

곧이어 다소 긴장되고 초췌한 모습의 선원들이 시타델에서 나왔다. 선원들은 다친 데 없이 모두 무사했다. 낮 12시 5분이었다. 특수전요원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배 내부에 숨어 있을지 모를 해적들을 찾기 위해 72개 격실을 모두 뒤졌다. 해적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상황 종료!”

소식이 서울로 전해지자 피랍사건을 담당해 온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그제야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구나”라며 안도했다.

불과 약 14시간 전만 해도 서울의 당국자들 중 아무도 선원들이 이렇게 무사히 구출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5시 15분(현지 시간 20일 오후 10시 15분). 국토해양부 상황실의 경보가 급박하게 울리며 당직자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인도양을 항해하던 텐진호에서 보낸 위험신호(SSAS)였다. 위험신호는 해적들의 공격을 받았을 때 선원들이 긴급하게 누르는 버튼으로 전달된다.

당직자는 곧바로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될 위험 상황에 빠져 있다고 직감했다. 외교부와 청와대 등에 상황을 전파했다. 아덴 만 해역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청해부대에도 합동참모본부를 통해 “납치 위험에 빠진 선박이 있는 듯하다”는 긴급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텐진호로부터 더는 신호가 없었다. 선원들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 채 통신은 두절됐다.

아덴 만에 있던 최영함이 이날 0시경(현지 시간) 텐진호의 통신이 끊긴 지점으로 기동을 시작했다. 도착까지 거리는 482km. 9시간이 걸릴 터였다.

우선 연합함대 소속 터키 군함에 현장 접근을 요청했다. 마침 터키 군함이 텐진호가 멈춘 지점에서 불과 112km 떨어진 해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경보가 울린 지 약 3시간 뒤인 21일 오전 1시 15분 텐진호 인근에 도착한 터키 군함이 헬기를 띄웠다.

아직 어두컴컴한 밤이어서 불확실했지만 선박은 정지돼 있었고 갑판은 불이 켜져 있었다. 해적들의 총격이 있자 텐진호 선장은 즉각 엔진을 정지시키고 선원들을 시타델로 대피시킨 상황이었다. 헬기가 아무리 뒤져도 해적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선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 보고를 접한 당국자들은 해적의 납치 시도가 있었지만 선원들이 시타델로 숨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천영우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 주재로 관계부처 대책회의가 소집됐다. 청해부대를 텐진호에 승선시켜 상황을 끝내겠다는 작전계획이 수립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터키 군함이 텐진호 위에 선원도 해적도 없다는 사실을 알렸고 한진해운 측이 ‘선원들은 해적의 납치 시도가 있으면 엔진을 끄고 10분 만에 시타델로 대피하도록 훈련을 받았다’고 전했기 때문에 선원들이 대피했을 것이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오전 7시. 최영함의 링스헬기가 텐진호에 접근했다. 오전 9시 반 최영함이 텐진호에 다다르기 전까지 링스헬기는 텐진호 외부와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해적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매복해 있으면서 한국군을 유도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특수전요원들이 곧바로 승선해 전 선원의 안전을 확인했다.

한편 해적들이 텐진호를 납치하려 한 것은 청해부대의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과 해적 사살에 대한 보복 시도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텐진호가 공격 받은 지점은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던 해적들의 근거지와 같은 소말리아 동북쪽 해역이다. 더욱이 해적들이 통상 납치해 온 벌크선이 아니라 건현(수면에서 갑판까지 높이)이 높아 납치 과정에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대형 컨테이너선을 공격한 점도 보복 납치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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