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진보신당 반대 시위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의원들이 박희태 국회의장석으로 몰려가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표결 처리에 반대를 표시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지난해 12월 예산안 처리의 ‘악몽’ 탓일까. 한나라당은 일찌감치 의결정족수(299명의 과반인 150명)를 채우고도 한동안 단독 처리를 주저했다. 민주당 역시 몸싸움을 피한 채 본회의를 보이콧하는 것으로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결국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은 한나라당과 미래희망연대 의원 등이 참여한 가운데 4일 오후 10시 48분 국회를 통과했다.
○ 긴박했던 표결 순간
이날 오후 10시 3분 본회의가 개의됐다. 당초 예정시간(오후 3시)을 7시간이나 넘긴 뒤였다. 개의에 앞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야당 의원 7명은 국회의장석을 둘러싸고 있었으나 “의장석을 비워 달라”는 국회 경위들의 요청에 큰 저항 없이 물러났다.
대신 민노당 이정희, 강기갑 의원 등은 사실상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행사했다. 박희태 의장의 수차례 제지에도 발언시간(5분)을 넘겨 반대토론을 계속하자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 등이 ‘토론 종결’을 긴급 요청했다. 박 의장이 이를 투표에 부쳐 ‘토론 종결’을 선언하자 반대토론을 준비하던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등이 격렬히 반발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한-EU FTA 비준동의안 표결은 1분 만에 끝났다. 재석 169명 중 163명이 찬성하고 1명이 반대, 5명이 기권했다. 반대표를 던진 황영철 의원(강원 홍천-횡성)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18대 총선 출마 당시 FTA 비준동의안에 반대하겠다고 약속해 반대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외교통상통일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당시 기권했던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은 찬성했다.
○ 손 대표의 ‘전략적 모호성’과 좌우 눈치보기 행보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이날 의총 모두 발언과 마무리 발언을 통해 “피해 산업과 피해 국민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 일인 만큼 결코 서둘러서 할 일은 아니고 급히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며 “여야 합의안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준안 발효(7월 1일)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다”면서 “중산층의 기대를 결코 저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피해 대책이 보완될 경우 6월 국회에서 비준안이 처리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비준안 처리를 밀어붙이면 야권연대가 흔들리고, 여야 합의를 원점으로 되돌리면 ‘발목만 잡는 야당’이란 비판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 사이에서 의도된 ‘모호성’을 보이는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당 안팎에서는 손 대표가 진보와 중도 사이에서 ‘눈치보기’ 행보에서 벗어나 과감한 결단을 통해 책임 있는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 민주당의 노선갈등 표출과 남은 관련 법안 처리는
FTA 통과 후속대책으로 마련된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본회의 통과에 앞서 해당 상임위와 법제사법위를 먼저 통과해야 했으나, 해당 상임위원장과 법사위원장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어서 회의 자체가 열리지 못했다. 한나라당 이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과 합의한 대로 이들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7월 FTA 발효에 앞서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이날 하루 종일 극심한 ‘노선투쟁’을 벌였다. 이날 오후 열린 의총에서 전체 의원 86명 중 23명이 토론에 나서 10명은 찬성, 10명은 반대했고, 3명은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여야 합의문의 서명자인 박지원 원내대표는 “책임 있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마지막까지 의원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손 대표가 “이 상태로 통과시키기 어렵다”고 ‘합의 파기’를 선언해 의총은 4시간 만에 끝났다. 박 원내대표는 비준동의안 통과 후 합의 처리를 못한 데 대해 “천추의 한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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