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 이후 침묵해온 이재오 특임장관이 11일 측근을 통해 입을 열었다. 자신이 장관직 사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자 적극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 장관은 소장파와 친박(친박근혜)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의원들의 지원으로 중도성향 황우여 원내대표가 당선된
뒤 입을 닫았다. 자신이 주축이 돼 밀었던 안경률 의원이 낙선하면서 소장파 등 신주류로부터 개혁대상 1순위로 거론되고 정치
일선에서 퇴진하라는 압박까지 받아왔다.
이 장관은 이날 오후 특임장관실 관계자를 통해 “(장관직) 사퇴 의사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장고(長考)에 들어간 것은 미래를 고민하기 위한 것이지 내 거취를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이날 충북 괴산군민회관에서 열린 공무원 대상 특강에서는 신주류가 친이(친이명박)계 핵심세력을 두고 ‘구주류
퇴진론’을 제기하는 상황을 겨냥한 듯 “내 이름 앞에 ‘2인자’ 등의 수식어를 붙여 공연히 사람을 으스스하게 만든다. 이재오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고 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장관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내놓던 트위터 활동은 6일을 끝으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개헌에 대한 생각은 지난달 29일 61번째
글을 올린 뒤 끊겼다. 9일 오전엔 정부중앙청사 사무실로 출근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구(서울 은평을)로 돌아갔다. 11일
오전엔 시내 한 호텔에서 조찬특강을 한 뒤 장관실에 도착해 업무를 수행했지만 1시간여 만에 괴산 특강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권에선 이 장관이 향후 거취 문제를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결론지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장관은 이날 특임장관실을
통해 그동안의 침묵 이유에 대해 “원내대표 경선을 계기로 국정 운영과 한나라당의 변화 방안을 고심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말을 아낄
뿐”이라고 밝혔지만, 주변에선 다른 관측도 나온다. 한 측근 의원은 “이 장관은 15일 이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면
자신의 거취와 정치활동을 상의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이 ‘사퇴 의사가 없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누구에게 내몰려
거취를 정하는 일은 없다는 의미”라며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사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장관이 한나라당에 복귀하고 신주류로부터 구주류로 몰린 친이계 핵심세력이 본격적으로 당내 문제에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이 장관이 7월경 열릴 전당대회에서 친이계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이상득 의원과 연대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
장관은 원내대표 경선 패배 이후 측근들에게 이 의원이 아닌, ‘변절한 친이계’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했다고 한다. 핵심 측근인
권택기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장관의 ‘배신’이란 언급은 이명박 정부 탄생과 함께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겠다던 사람들이 ‘미래권력’을 향해 몰려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 말”이라고 전했다.
이 장관은 4·27
재·보궐선거 직전에 있었던 두 차례의 친이계 의원 모임이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특임장관실 명의로 낸 보도자료에서 이 장관은 “(대통령 지시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의원들이 모이는 자리에 장관을
초청해 참석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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