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였던 이만섭 前의장 “5·16 옹호 않지만 불가피한 측면 구국 신념 잇고 억압문화 끊어야”
동아일보 DB
《 50년이 지났지만 5·16군사정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혁명이냐 쿠데타냐는 사건의 정의부터 5·16 이후 태동한 군사정부의 정치·경제·사회적 공과에 이르기까지 5·16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긴 유산은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으로 한국의 정치지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아일보는 두 원로 정치인 이만섭, 임채정 전 국회의장의 증언과 평가를 통해 5·16과 박정희 시대를 둘러싼 주요 논점을 되짚어봤다. 》 이만섭 전 국회의장(사진)은 5·16군사정변 직후 동아일보 기자로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처음으로 단독 인터뷰했고 정계에 투신한 이후 ‘혁명동지’에 버금가는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3선 개헌에 반대해 박 전 대통령과 멀어졌다. 그럼에도 평소 “내 정치 스승은 박 전 대통령”이라고 말해왔다. 2009년엔 회고록 ‘5·16과 10·26-박정희, 김재규 그리고 나’를 내기도 했다.
―5·16 소식은 어떻게 접했나.
“그날 새벽 회사로 출근하기 전에 집으로 전화가 왔다. 중학(대구 대륜중) 후배인 해병대 장교라고만 밝힌 사람이 ‘군사혁명이 일어났습니다’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소식을 듣고 어떤 느낌이었나.
“사실 별로 놀라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당시 장면 정부는 무능의 극치였고 사회는 거의 아노미 상태였다.”
―그래도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 아닌가.
“장면 정부는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총을 한 번도 잡은 적이 없는 사람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하는 수준이었다. 무정부 상태였다.”
―5·16 주체들과 처음엔 사이가 안 좋았던 것으로 안다.
“1961년 6월 3일 윤보선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그해) 9월 유엔총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조속히 정권을 민간에 이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나는 ‘써야 한다’고 주장해 동아일보는 이 기사를 1면에 냈다. 그러자 군사정부는 ‘윤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을 기사화했다’며 나를 두 달 넘게 육군 형무소에 가둬버렸다.”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의 시작은….
“1962년 가을 박 의장이 울릉도를 시찰할 때 처음 만났다. 박 의장이 강원도에서 울릉도로 가는 전함을 탄다는 것을 듣고 미리 전함에 들어가 기관실에 숨어 있다가 배가 출발한 후 갑판에 나와 ‘동아일보 이만섭 기자입니다’라고 인사했다.”
―박 전 대통령의 반응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요즘 동아일보가 문제다. 쌀값이 오르면 1면 톱으로 쓰니 쌀값이 더 오르는 것 아니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사실보도야 신문의 사명 아니냐’고 맞서 초면에 논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그의 정치철학을 소상히 듣게 됐다.”
―첫 대면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
“소탈했고 민족중흥, 경제발전, 자주국방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민족주의자로 기억한다. 울릉도에서 갑자기 내 손을 잡으며 ‘논길이나 걷자’더니 피폐한 농촌 상황과 왜 자신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얘기했다.”
―정계 진출 이후 박 전 대통령을 수시로 만났다고 들었다.
“공화당 의원으로 등원한 후 1주일에 한 번 정도 나를 청와대로 찾았다. 요즘 말로 ‘번개 모임’이 잦았다. 그때 자주 불렀던 사람이 내 중학 은사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그가 10·26사태를 일으켰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집권 초반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은 어땠나.
“3선 개헌 전까지만 하고 물러났다면 더 많은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경제개발을 위한 노력은 이미 다 알려진 것이고 나는 유연했던 용인술에 높은 평가를 주고 싶다. 1964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앞두고 외교가에서는 외교관 출신인 최규하 씨를 외교부 장관 후보로 밀었으나 박 대통령은 ‘지금은 추진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동원 씨를 장관에 임명해 결국 국교 정상화를 성사시켰다.”
―3선 개헌으로 박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결별했는데….
“1969년 6월 29일 청와대에 들어가 ‘5·16을 군사혁명에서 국민혁명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해야 한다’고 2시간 40분 동안 박 대통령을 설득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이 전 의장은 이날 이후 더는 사석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고 여당 공천을 받지 못해 1978년에야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5·16과 박 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5·16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학자들은 헌정 중단에 따른 민주주의 후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한가한 얘기다. 군이든 민간이든 누구라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유신체제 이후에는 경제개발이라는 성과보다는 민주주의 후퇴라는 폐해가 더 많았다. 결국 5·16과 박 대통령은 ‘승계와 단절’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의 결단과 시대정신, 구국을 위한 신념과 도전은 승계하고 민주주의 후퇴와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문화와는 단절해야 한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이만섭 前의장
― 1932년 대구 출생 ― 195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1963년 6대 국회의원(공화당 비례대표) 7, 10, 11, 12, 14, 15, 16대 의원(8선) ― 1985년 한국국민당 총재 ― 1993, 2000년 14, 16대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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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많은 댓글
2011-05-17 06:35:27
1960년대에 민주화라 .. 그 때는 나는 걸을 힘도 없던데, 다들 살만 했나 보구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국민 절반 이상의 조상이 잔치집이나 초상집 기웃거리던 거지인 줄로 아는데. 거지꼴에 민주화라 .. 꼴값도 정도 껏해라
2011-05-17 23:27:53
손학규.정동영.정세균이 자슥들이 배떼지 부른 소리 하는데, 지금 네놈들이 밥처먹고 정치하는것도 다 박정희 대통령 덕이란걸 알아야한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는놈들이 외 주둥아리가 그렇게 더럽냐.
2011-05-17 15:00:46
성공한 쿠테타는 혁명인 것이고....실패하면 쿠테타 이자 반역이 뿐이다. 역사는 그렇게 기로할 뿐이다. 단지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쿠테타가 맞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나라에 혁명적인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형식은 쿠테타지만 과정은 혁명이였다. 어찌됐던, 우리 국민들 입장에서는 복 받은 것이다. 아프리카 독재국과 우리는 너무 다른 정치가를 만난것...그것은 큰 행운이였다. 그뿐이다.
이런 리더를 갖게 된 것은 우리나라로서는 행운이었다. 우리보다 민주화 선진국이었고 잘살던 필리핀은 어떻게 됐나. 박 통의 공적을 부인하면 아무것도 인정받을 수 없다.
2011-05-17 23:27:53
손학규.정동영.정세균이 자슥들이 배떼지 부른 소리 하는데, 지금 네놈들이 밥처먹고 정치하는것도 다 박정희 대통령 덕이란걸 알아야한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는놈들이 외 주둥아리가 그렇게 더럽냐.
2011-05-17 15:55:47
네, 나도 이만섭씨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공사를 분간하고 잘한것은 잘했다고 말해야하는것이 국민들을 제대로 설득하는 행동이 지도자가 할일이라고본다.
2011-05-17 15:42:05
독재로 인해 고통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평가가 절로 될 것이다.
2011-05-17 15:00:46
성공한 쿠테타는 혁명인 것이고....실패하면 쿠테타 이자 반역이 뿐이다. 역사는 그렇게 기로할 뿐이다. 단지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쿠테타가 맞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나라에 혁명적인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형식은 쿠테타지만 과정은 혁명이였다. 어찌됐던, 우리 국민들 입장에서는 복 받은 것이다. 아프리카 독재국과 우리는 너무 다른 정치가를 만난것...그것은 큰 행운이였다. 그뿐이다.
2011-05-17 14:51:59
5.16그거 참 좋았지요. 예수의 부활보다 더 좋았고 석가의 해탈보다 좋았습니다. 세상이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게 현실인가 꿈인가 생시인가 아연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을순 없었습니다. 드디어 광명이열리고 대한민국이 무궁화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5.16 새벽 그날 초라한 나의 인생, 한국이 송두리째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2011-05-17 14:31:59
5.16그거 참 좋았지요. 요즘 말로 엄청 좋은 거였죠. 엄청 좋다!! 엄청 좋은 혁명이다보니 참 말도 많습니다. 아무튼 한국을 완전히 새롭게 바꿔놓았어요. 천둥 벼락이 하늘을 가르고 거대한 지진이 땅을 갈랏습니다. 한 순간에 한국이확 변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천년의 가난을 벗어 던질 기회였습니다. 죽어버리고 말살되었던 한민족 정기를... 한국인의 잠재력과 능력을 세계적 창조력으로 끌어낸 위대한 역사창조가 천둥벼락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2011-05-17 13:38:15
위선자를 다시 평가한다. 온갖 특혜를 누리도록 해주고 국회의장까지 만들어 준 사람이 바로 박정희였다. 이만섭이 처음에는 정권에 대한 무차별 반대에 앞장섰다가 진로를 바꾸었지. 민주주의의 후퇴란 바로 정치권력을 위한투쟁에만 매달리던 사람들의 평가일 뿐이다. 박정희처럼 장기간 죽기살기로 경제건설에 대달리지 않았으면 그만한 발전을 했겠나?
2011-05-17 13:32:47
지 손자놈 군대 안보낼려고 미국시민으로 국적변경 시키고나서 기자들이 찾아가자"내 손자는 미국을 정복할 녀석이어서 국적변경시켰다고 둘러대는 인간의 혓바닥이다. 다 개짖는 소리.....
2011-05-17 12:49:06
5.16그거 참 좋았지요. 한국을 완전히 새롭게 바꿔놓았어요. 천둥 벼락이 하늘을 가르고 거대한 지진이 땅을 갈랏습니다. 한 순간에 한국이 확 변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천년의 가난을 벗어 던질 기회였습니다. 죽어버리고 말살되었던 한민족 정기를... 한국인의 잠재력과 능력을 세계적 창조력으로 끌어낸 위대한 역사창조가 천둥벼락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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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06:35:27
1960년대에 민주화라 .. 그 때는 나는 걸을 힘도 없던데, 다들 살만 했나 보구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국민 절반 이상의 조상이 잔치집이나 초상집 기웃거리던 거지인 줄로 아는데. 거지꼴에 민주화라 .. 꼴값도 정도 껏해라
2011-05-17 23:27:53
손학규.정동영.정세균이 자슥들이 배떼지 부른 소리 하는데, 지금 네놈들이 밥처먹고 정치하는것도 다 박정희 대통령 덕이란걸 알아야한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는놈들이 외 주둥아리가 그렇게 더럽냐.
2011-05-17 15:00:46
성공한 쿠테타는 혁명인 것이고....실패하면 쿠테타 이자 반역이 뿐이다. 역사는 그렇게 기로할 뿐이다. 단지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쿠테타가 맞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나라에 혁명적인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형식은 쿠테타지만 과정은 혁명이였다. 어찌됐던, 우리 국민들 입장에서는 복 받은 것이다. 아프리카 독재국과 우리는 너무 다른 정치가를 만난것...그것은 큰 행운이였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