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2일 방중 3일째를 맞아 3000km가량을 약 30시간 동안 기차로 달리는 등 전례 없이 강행군을 이어갔다. 그는 보안 속에 움직이고 있지만 그가 지나는 주요 기차역에서 특별열차가 통과하는 것이 감지되고 누리꾼들의 트위터를 통해서도 그의 동선 일부가 드러나기도 했다. ○ 중국어로 “다시 오겠습니다”
김 위원장은 21일 오후 지린(吉林) 성 창춘(長春)을 떠나기 전 잠시 머문 난후(南湖)호텔에서 오찬 연회를 가졌다. 연회에 참가한 중국 측 인사는 “평소처럼 왼쪽 다리를 절긴 했지만 건강한 듯 행동했고 표정이 밝았다”며 “목소리도 활기차고 기운이 넘쳤다”고 말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주변에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가 하면 앉고 설 때도 별다른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혈색도 지난해 8월 이곳에 묵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괜찮았다는 전언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처음으로 중국어를 사용했다. 그는 왕루린(王儒林) 지린성장 등이 참석한 연회 말미에서 큰 소리로 중국어로 “다시 오겠습니다(下次還回來·샤츠하이후이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헤어질 때 쓰는 간단한 표현인 ‘짜이젠(再見)’조차 통역을 시켜온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중국어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창춘에 도착하자마자 여장도 풀지 않고 곧바로 이치(一氣)자동차 본사를 방문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이치자동차가 북한 나선시 투자를 준비 중이라는 말이 있는 만큼 김 위원장의 본사 방문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 ‘웨이보’를 통해 동선 일부 노출
김 위원장의 비밀에 싸인 행보는 중국판 트위터에 해당하는 웨이보를 통해 조금씩 외부로 드러나고 있다. 창춘을 떠나 선양(瀋陽)을 거쳐 베이징(北京) 또는 톈진(天津)으로 향할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특별열차의 행방이 묘연해졌을 때 창춘에서 1800여 km 떨어진 장쑤(江蘇) 성 양저우(揚州)의 한 누리꾼이 오전 9시 49분경 “김정일이 양저우의 경제개발구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글을 올렸다. ○ 말썽 피웠던 S클래스 방탄차 대신 ‘마이바흐’
창춘에서 목격된 김 위원장의 차량은 벤츠의 최고급 승용차 ‘마이바흐 62S’였다. 일행이 탄 차량은 일본 도요타의 렉서스 등으로 번호판에 지린 성을 뜻하는 ‘吉’자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차량 행렬 중간의 마이바흐에만 베이징을 뜻하는 ‘京’자가 달려 있었다.
지난해 방중 때 김 위원장의 차량 행렬에는 마이바흐와 ‘벤츠 S클래스 가드(Guard·방탄차 브랜드)’가 함께 있었는데 이번에는 마이바흐만 보였다. 북한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번호판은 중국에 와서 단 것으로 보인다. 방탄차량 가운데 방탄 성능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알려진 벤츠 S클래스 가드는 지난해 방중 때 ‘사소한 말썽’(잔고장으로 추정됨)을 일으켜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 사흘간 열차 내 숙박…건강 과시
김정일은 사흘째 특별열차에서 숙박하면서 3일 동안 약 3000km 거리를 이동했다. 도중에 2차례의 연회에 참석했고 유적지와 산업현장을 방문했다. 그리고 야간에 이동해 둘째 날 오전 도착한 창춘에서는 자동차 공장을 들렀고, 중국 측과 오찬을 가졌다. 이후 이날 오후 2시 20분경 다시 창춘을 출발해 약 30시간을 달려 이튿날 오후 7시가 넘어 장쑤 성 양저우에 도착했다.
물론 특별열차는 ‘달리는 특급호텔’로 부를 수준이다. 침실은 물론이고 고급 소파와 책상, 벽걸이TV 등이 설치돼 있다. 고급 호텔처럼 화려하고 편안하게 꾸며져 있는 게 특징. 2004년 조선중앙TV가 김 위원장의 방중 관련 기록영화를 방송하면서 내부를 일부 공개한 바 있다. 그렇지만 달리는 열차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김 위원장이 자신의 건강을 의도적으로 과시하고 중국 지역을 보다 넓게 돌아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창춘=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양저우=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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