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정상, 결례 논란 뒤로하고 ‘통큰 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3일 03시 00분


日총리 “오염 소문 동북지방 농산물 시식해줘서 감사”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에 따른 동북지방 농산물 오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통 큰 이벤트’에 동참했다.

이 대통령과 원 총리는 방일 직후인 21일 오후 후쿠시마 시의 한 체육관에서 동북지방에서 재배한 채소 시식행사를 가졌다. 주민들은 ‘어서 오세요’라고 적힌 한글 현수막을 들고 환영했다. 이곳은 원전 부근의 주민들이 옮겨와 2개월 이상 머물고 있는 대피소로,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도 자리를 함께했다.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농산물과 식품류 수출은 거의 막힌 상황이다. 간 총리는 세계에 알려진 만큼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는 점을 호소하기 위해 한중 정상의 후쿠시마 방문을 절실히 원했다. 이를 두고 “외국 정상에 대한 실례”란 말도 나왔지만 한중 정상은 이웃나라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흔쾌히 응했다.

간이 테이블에는 체리 방울토마토 오이 아스파라거스 등 지역 농산물이 차려졌다. 이 대통령은 밝은 표정으로 아스파라거스를 제외한 세 가지를 모두 맛봤다. 원 총리도 체리와 오이 등을 먹었다. 일본 방송들은 이날 저녁 뉴스에서 이 장면을 반복해 방영했고, 일본의 신문들은 22일자에 일제히 이 사진을 1면에 실었다. 한국과 중국 지도자가 ‘소문에 의한 실제 이상의 농작물 피해 우려를 불식시킴으로써 일본의 복구 노력에 힘을 보탰다’는 내용이 자세히 소개됐다.

21일 저녁 도쿄 영빈관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도 이 지역 농수산물이 식재료로 쓰였다. 간 총리는 22일 3국 정상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악소문으로 괴로워하는 지역 주민에게 큰 도움이 됐다. 정말 감사하다”며 두 정상에게 사의를 표했다. 정상회의 첫머리에 참석자들은 간 총리의 제안에 따라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1분간 묵념했다.

이 대통령의 ‘위문 외교’도 활발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지진해일(쓰나미) 피해가 집중된 미야기(宮城) 현 나토리(名取) 시를 찾았다. 논밭 한가운데에 자동차들이 고꾸라져 있는 참상을 직접 본 이 대통령은 피해 주민들에게 “한국의 초등학생부터 모든 국민이 저에게 진심으로 따뜻한 마음을 전달해 달라고 했다”며 “일본 국민의 절제된 모습과 용기에 세계가 깜짝 놀랐다”고 격려했다. 이 대통령은 피난소 2층에 걸린 벽시계가 쓰나미 발생 시각인 2시 50분에 멈춰 있는 것을 보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으며 침수됐던 가옥에서 헌화하고 묵념했다. 피해 현장에서 가족의 유품을 찾고 있던 한 부부에겐 우리나라 초등학생이 “We are friends(우리는 친구)”라는 문구와 물고기를 그려 넣은 부채를 선물하며 위로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다가조(多賀城) 시의 피난소를 방문했다. 휠체어에 앉은 노인들은 무릎을 구부리고 위로하는 이 대통령 앞에서 눈물을 훔쳤다. 이 대통령은 한 30대 남성의 네 살배기 딸을 안고는 “나중에 (한국에) 놀러오라”고 말한 뒤 아이를 다시 아빠에게 돌려주려 했으나 아이가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주위에서 떼어놓자 울음을 터뜨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기증한 세탁기와 김 상자 앞에서 주민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한국민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원전 피난소 내에 포장박스로 만들어 놓은 임시 거처에서 이재민 어린이들과 인형을 갖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현지 TV에 거듭 방영돼 ‘따뜻한 이웃나라 지도자’라는 인상을 남겼다.

도쿄=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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