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8월에 이어 동북 3성(지린 랴오닝 헤이룽장 성)을 중국 방문의 루트로 삼았다. 먼 길을 우회하는 이런 방중 루트에는 김 위원장이 중국에 던지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북 3성은 중국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는 지역이라 김 위원장이 이곳에서 경제 발전상을 보려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이곳에는 김 위원장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항일운동을 펼친 이른바 ‘혁명유적지’가 몰려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3남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버지 유적지를 ‘성지순례’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김 위원장의 동북 3성 방문에 숨어 있는 ‘북-중 관계의 정치학’을 볼 수 없게 만든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최명해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23일 “김 위원장 방중을 후계구도 정당화를 위한 것으로 보는 접근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동북 3성 방문을 통해 김일성이 항일투쟁을 위해 중국 공산당과 함께 결성한 동북항일연군의 역사를 불러냄으로써 ‘피로 맺은 우호친선’이라는 공동의 정체성을 중국에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20일 방문한 헤이룽장(黑龍江) 성 무단장(牡丹江)은 동북항일연군이 1930년대에 활동했던 주무대다.
최근 한국과 미국이 대북정책에서 한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북한이 의지할 곳은 중국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중국마저 ‘남북대화가 우선’이라는 한국의 정책에 동의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과거 아버지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중국을 도왔는데, 지금 우리를 돕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느냐’는 메시지를 던지며 원조와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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