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을 김정일이라 말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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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8일 14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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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좀 놀랐다. 일부 예비군 훈련장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사진을 표적으로 사용한 것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사실 북한 입장에서는 저런 것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교주의 얼굴이 타 종교 신자들의 사격 표적이 됐다는 소식을 접한 어떤 사이비 종교단체의 반발이나 비슷한 거다.

그런데 문제는 저걸 어떻게 표현하냐 하는 방법상의 문제다. 북한이란 사회에서 “남조선 도당이 장군님의 초상화를 목표물로 하고…”란 말은 죽어도 할 수 없는 말이다.

예전에 이 블로그에도 한번 쓴 적이 있지만 1990년대 남한 기업인이 북한에 들어가서 술자리를 갖다가 김정일 이야기가 나온 자리에서 “전주 김씨들은 정력 하나는 대단하다”고 말한 일이 있다.

참고로 김일성, 김정일은 다 전주 김씨들이다. 결국 김정일의 정력이 대단히 세다는 말이다. 북한이란 사회에서 남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모르는 척 하면 그건 반동이 되는 길이다.

결국 신고가 들어갔고 보위부가 출동해 이 기업인을 잡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업인을 체포한 뒤 그 경위서를 어떻게 써서 올리는가 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장군님의 정력이 세다고 했습니다”고 죽어도 쓸 수 없는 일. 만일 그렇게 썼다간 쓴 놈 자체가 무엄하다고 목이 날아가는 사회가 북한이다.

보고서 작성이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돼 버린 셈이다. 결국 누구도 무서워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없었고 이 기업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석방돼 돌아왔다.

북한은 이런 사회다.

싸움질하며 욕설을 퍼붓다 상대방에게 삿대질을 날려도 그 상대방이 김일성 배지가 달려있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떠받치며 “엇따 삿대질이냐”하고 소리치면 손가락이 쑥 움츠러드는 것이 북한이다.

그런 사회에서 김정일 얼굴이 표적이 됐다고 떠들다니 참, 이상하다.

물론 3일 발표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을 보면 김정일 사진을 거론한 일은 없다. 그 대목을 살펴보면 이렇다.

“세계는 나라와 민족의 최고존엄을 지키기 위한 우리 천만군민의 보복대응이 어떤 것이고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덤비고 있는 이명박 역도와 괴뢰 군부호전광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가를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 북한은 ‘최고존엄’이라는 말로 에돌아 표현했다. 평소엔 북한에서 거의 쓰지도 않는 표현이다.

그렇긴 하더라도 노동신문 등에 나오면 사람들이 다 알아버리는데, 그건 북한으로 봤을 때도 교양적 가치가 전혀 없는 일이다.

아무리 이명박 대통령을 때려죽일 적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들, 차마 “남조선에서 장군님 초상화를 목표판으로 쓰고 있다”는 말을 주민들에게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모든 주민들은 집에 걸려 있는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쳐다보면서 저것이 표적지가 되는 상상을 해볼 것인데 북한 입장에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상하다. 노동신문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분노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노동신문은 5일 논설에서 “역적패당의 반공화국대결책동이 ‘체제통일’ 소동으로 강화되고 나중에는 우리의 최고존엄을 헐뜯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적시했다.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도 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에 대한 평양방직공장, 황해남도 안악군의 마명협동농장, 황해북도 사리원의 피복공장 등의 주민들의 거친 반응을 보도했다.

또 내각 사무국 국장, 김일성대 법률대 강좌장, 평양 보통강구역 품질감독소 감독원, 농근맹중앙위원회 위원장 등 언론계, 교육계, 노동계 등 북한의 사회 각계 인물들이 쏟아내는 비난을 그대로 방영했다.

이들은 “우리는 한 몸이 그대로 총탄이 되고 포탄이 되어 이명박 깡패 역도들에게 쌓이고 쌓인 원한과 참고 참은 분노를 터쳐 지구상에서 영영 쓸어버리고야 말 것”이라거나 “우리 인민군대의 무자비한 타격을 피할 자리는 지구상에 없다는 것을 역적패당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출연자는 섭외부터 시작해 격한 반응의 표정까지 주도 세밀하게 연습한 뒤 노출되는 것이라 이들이 말하는 말은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써준 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저들이 정말 김정일 사진이 표적이 된 것을 알고 저렇게 격분한 일이라면 개인적으로는 참 반가울 뿐이다.

앞서 말한 대로 북한 주민들이 집에 걸린 초상화를 쳐다보면서 그것이 표적판이 되는 상상을 줄 수 있다면 이건 참 대단한 일이다.

북한에서 떠들면 떠들수록 잃는 것이 훨씬 많다. 이명박 정부 증오하게 만들려 하다가 김정일의 이미지를 구겨지게 만드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당연히 그걸 생각할 텐데, 이상하게 최고존엄을 계속 떠들다니. 다른 사람은 이상할 것이 없이 그냥 지나갈 문제겠지만, 북한에서 나서 자라 공부한 나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마침 노동신문 논평이 나온 날 5일 저녁(일요일이었다) 북한에 살고 있는 주민과 전화를 할 기회가 생겼다.

내가 물어도 보기 전에 그가 전화기에 대고 빠른 속도로 먼저 말한다.

“거기서 우리 공화국기에 대고 총을 쏘니까 요즘 국경경비 엄청 세진단 말입니다. 보위부가 비상에 들어가고 전파탐지도 강화되고 난리입니다.”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최고존엄이 국기라고 선전하는가 보다.

그럼 그렇지….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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