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잇단 ‘票퓰리즘 공약’… 국고보조 지자체사업에 불똥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15일 03시 00분


재정부, 내년 각부처 사업예산 1조이상 삭감키로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등 무상복지 시리즈와 ‘반값 등록금’ 등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 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정부가 재원 마련을 위해 내년 예산 편성 과정에서 각 부처의 사업 예산을 최소 1조 원 이상 삭감하기로 했다. 정치권이 구체적인 재원 확보방안도 없이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는 것에 대해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삭감 대상에는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사항과 연관된 국고보조사업이 상당수 포함될 것으로 보여 예산당국이 정치권에 ‘선심성 정책을 내놓으면 대신 기존 사업을 포기하라’는 경고를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획재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13일 “정치권이 반값 등록금 등을 굳이 추진하겠다면 한정된 재원에서 부처의 기존 사업예산 및 지방자치단체 사업을 지원하는 국고보조사업 예산을 대폭 깎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도 12일 국회 기획재정위 업무보고 등을 통해 재정지출을 세수(稅收)보다 2∼3% 적게 집행하는 내용의 재정준칙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재정부는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국가예산으로 집행하는 573개 재정사업(56조5000억 원)을 다음 달까지 평가해 ‘미흡’ 판정을 받은 사업에 대해 우선적으로 예산을 10% 이상 삭감하기로 했다. 재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2010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48개 정부 부처가 재정사업을 진행하면서 당초 목표를 준수하지 못한 비율이 16.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율을 평균적으로 적용해도 573개 재정사업 중 100개 가까운 사업이 미흡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 260개 국고보조사업 ‘추진-개선-폐지’ 재분류 ▼

재정부 관계자는 “미흡 판정을 받은 사업뿐만 아니라 ‘보통’ 이상 등급을 받은 사업 중에도 상대적으로 성과가 안 좋은 경우 추가로 예산을 깎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재정 전문가들은 지난해 예산삭감률 13.8%(약 6000억 원)를 감안하면 내년 예산 편성 때 삭감 예산 규모가 1조 원을 웃돌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 재정성과평가실장은 “각종 정책들로 재정수요가 커져 정부가 재정효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기존 사업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는 추세”라며 “올해는 지난해보다 사업 예산 삭감률이나 삭감 규모가 훨씬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는 올해부터는 기초생활수급예산 등 법으로 지출이 보장돼 있어 예산 삭감이 어려운 재정사업의 경우 미흡 이하 등급을 받으면 담당 부처의 운영비를 깎는 방안을 처음 도입할 예정이다. 예산 삭감을 위해 평가가 진행 중인 573개 사업 중에는 정부가 국고에서 예산을 지원해 지방자치단체가 벌이는 국고보조사업이 260개(6조 원)가량 포함돼 있다. 국고보조사업에는 농공단지 조성, 지역문화사업 등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민원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사업이 많다. 이에 따라 국고보조사업 예산 삭감이 반영되는 2012년 예산안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정부의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낭비성 국고사업을 정리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사업 평가와 별도로 ‘국고보조사업 존치평가단’을 구성해 국고보조사업들을 재분류하고 있다. 존치평가단 관계자는 “국고보조사업을 정상 추진과 사업 개선, 폐지 등 3단계로 해 폐지로 분류되면 예산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며 “아예 예산 지원을 중단하면 실제 예산 삭감 규모가 훨씬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기존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예산 삭감에 나선 것은 정치권에서 ‘반값 등록금’ 등 복지 확대 요구가 거세지면서 내년 재정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개연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민주당의 구상대로 내년부터 ‘반값 등록금’을 전면 시행할 경우 최소 매년 7조 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내년부터 대학 등록금을 5∼10%씩 인하해 2016년까지 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추자는 한나라당의 방안이 실행돼도 연간 2조 원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