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官의 벽에 막혀… ‘김영란의 좌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16일 03시 00분


‘공직자 사익추구 금지법’ 14일 각의서 제동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이명박 대통령과 김황식 국무총리 및 각 부처 장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사진)이 입을 열었다. “공정사회, 국민과 함께하는 청렴 확산 방안을 보고하겠습니다.”

김 위원장이 이날 발표한 방안 가운데 역점을 둔 것은 ‘공직자의 청탁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안’이었다. 대법관 출신의 김 위원장이 정부의 공정사회 구현 정책의 일환으로 야심 차게 준비해 온 법안이다.

여기에는 공직자가 받는 모든 청탁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 보고하는 ‘청탁등록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공직자가 가족이나 지인에게 특혜를 주는 식으로 직위를 남용하면 금품수수 행위가 없더라도 징계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명시돼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존의 형법상 직위남용이나 배임죄 등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소소한 불법 행위까지 징계할 수 있게 된다.

김 위원장의 보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A 장관이 반박했다. “청탁이 아니라 건전한 의사소통으로 볼 수 있는 만남도 있어요.” B 장관도 “그런 내용이라면 현재 공직자윤리법을 고치는 것으로도 보완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다른 국무위원도 “어디까지가 청탁이고 민원인지, 또 의견 전달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도 지지 않고 “공청회나 국민토론회 등을 통해 그런 문제를 보완할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반론을 폈다. 또 “바로 그런 종류의 청탁 때문에 전관예우 문제도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다른 참석자들이 호응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복수의 참석자가 전했다. 논란을 지켜본 김 총리는 “이번 보고를 초안으로 삼아서 국민권익위가 실행안을 추진하고 진전된 내용을 다음 회의에서 보고하라”며 논의를 마무리했다.  
▼ “공직 부패 근절 계기되길”… MB, 金위원장에 힘 실어줘 ▼

논란이 된 법안은 이 대통령이 올 4월 국민권익위에 고위 공직자의 청렴도를 조사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따라 김 위원장이 내놓은 ‘특단의 조치’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친 모습이다. 한 국무회의 참석자는 “이상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는 데다 실현 가능성도 의문이어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크게 신경 쓸 방안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1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부산저축은행 사건 등을 계기로 공직비리 근절 방안이 급하게 추진되다 보니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해 환영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탁을 정의하는 문제에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국민 여론이 이를 지지하는 만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이를 계속 추진하겠다. 이 대통령도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 대통령은 이날 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오늘의 문제 제기가 (공직 부패 근절에 대한) 인식이 국민에게 확산되는 데 좋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참석자는 “국무위원들이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분위기 속에서 이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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