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흥시 시화공단에서 전기용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A 사장(서울 강남구 개포동)은 얼마 전 동료 중소기업 사장들과의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름 견실하다는 중소기업을 30년째 꾸려온 그는 “포항제철(현 포스코)과도 거래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우리의 영역을 지켜줬다. 지금은 중소기업이 할 게 없다”고 토로했다. 2009년부터 줄곧 회사 매출이 7∼10%씩 빠지고 있다는 A 사장은 “강남에 살면서 줄곧 한나라당만 찍었는데 돌아온 게 뭐냐”고 반문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해온 집권 여당이 최근 이례적으로 대기업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그 배경 중 하나로 A 사장과 같은 중소기업인과 자영업자 등의 이반을 꼽고 있다. 그동안 중산층 또는 그 이상이라고 자부하고 살아온 그들 중 상당수가 ‘기업 하기 좋은 나라’ ‘중산층이 잘사는 사회’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 내내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고, 이는 곧 보수층의 대표적 지지층인 ‘강남벨트’의 균열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 “이러다 ‘경제 재스민’ 터진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요즘 사석에서 중동의 민주화 시위를 빗대 ‘경제 재스민’이란 표현을 종종 쓴다. 그만큼 ‘한 줌’의 대기업과 기타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의 양극화가 폭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강남에 사는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29일 “4·27 재·보선 이후 동네 모임에 갔는데 참석자의 80%가량이 정부의 대기업 정책을 비판했다. 자기네 사업체들은 넘어가게 생겼는데 대기업 세금은 깎아주겠다는 소리에 분통을 터뜨리더라”고 전했다. 강남에서 큰 학원을 운영하는 B 사장은 “대기업들이 자식들에게 기업을 떼어주거나 물려주는 행태를 보면 거의 횡령이나 마찬가지”라고 목청을 높였다.
한나라당의 아성으로 여겨지던 강남벨트에서조차 민심이 이처럼 악화된 상황이니 다른 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게 한나라당 의원들의 인식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 정부’ ‘한나라당은 재벌당’이라는 유권자들의 인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내년 총선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평균의 50∼150%에 해당하는 중산층의 경제적 추락은 통계적으로도 입증된다. 국민의 실질구매력을 뜻하는 국내총소득(GDI)도 올해 1분기에는 오히려 0.6% 하락했다. GDI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2008년 4분기(―0.6%) 이후 27개월 만에 처음이다.
한나라당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민심은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의 성장 과실을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한나라당은 노사, 규제, 세제, 복지 등 전방위에서 대기업의 태도 변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회 동반성장 공청회에선 “한 대기업의 계열사가 47개다. 이게 지네발 아니냐”(정태근 의원) “타이슨 같은 권투 선수가 아마추어 선수에게 ‘승부 세계는 냉정하니 한판 붙자’고 하는 게 공정한가”(이종혁 의원)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
○ 한나라당, 대기업 압박 더 거세질 듯
한나라당은 7·4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가 구성되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대기업 압박과 서민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같은 수준으론 중산층과 강남벨트라는 전통적인 ‘집토끼’를 지켜낼 수 없다는 인식이 나온다.
전대에 나온 유력 후보들도 한결같이 대기업 관련 정책을 다듬고 있다.
실제로 홍준표 후보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중소기업이 전통적으로 영업해온 분야에는 심사를 거쳐 대기업의 시장 참여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겠다. 지금은 두부, 콩나물 시장까지 진출했는데 이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학 박사인 유승민 후보도 “대기업 등 부자들이 돈을 주체 못하고, 가난한 사람이 죽어가는 걸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며 “앞으로 대기업 총수와 임원이 법망에 걸리면 절대 사면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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