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9시. 워싱턴에서 차로 4시간 떨어져 있는 미국 버지니아 주 노퍽 해군기지에 1만여 명이 몰렸다. 매서운 바닷바람이 귓전을 때리던 1월 13일 아라비아 해로 떠난 핵추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USS Enterprise CVN 65)’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뒤 수병 4600명을 싣고 6개월 만에 돌아오는 날이다.
가족과 친지들은 따가운 여름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12부두에 몰렸다. 인근 호텔 객실은 모두 동났다. 대형 스피커에선 무사 귀항 소식과 함께 환영 음악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미 해군2함대사령부는 세계 최초 핵추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의 취역 50주년을 맞아 귀항식을 공개했다. 1961년 11월 25일 취역한 이 배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항공모함. 쿠바 미사일 위기부터 베트남전, 이라크전의 ‘사막의 폭풍’ 작전, 리비아의 ‘오디세이의 새벽’ 작전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미 전쟁사의 50년 산증인이다.
이번에 21번째로 전장에 배치되었던 엔터프라이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구적인 자유’ 작전을 벌이고 이라크의 ‘새 새벽’ 작전과 리비아의 ‘오디세이의 새벽’ 작전에 참여했다. 항공모함 역사상 처음으로 소말리아 해적 소탕작전에 나서 해적 75명을 생포하기도 했다. 리비아 사태 때는 이지스 구축함인 USS 배리가 토마호크 미사일을 100발 이상 무아마르 카다피군 기지를 향해 발사했다. 184일 동안 엔터프라이즈는 6만 마일을 항해했다.
오전 10시. 엔터프라이즈를 마중 나가는 예인선 2척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나면서 공중으로 물을 뿜어내는 수상 쇼를 선보였다. 가족들이 일제히 일어나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한 손에는 성조기를, 다른 손에는 환영 팻말을 든 가족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웰컴 홈 아이작. 너무 보고 싶었어.’ ‘웰컴 홈 대디. 아빠 사랑해요.’ 각양각색의 환영 팻말을 든 가족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위스콘신에서 차를 몰고 이틀 동안 달려왔다는 조앤 슈미츠 할머니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외손자 크리스토퍼가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엔터프라이즈가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하는 장면을 TV에서 봤다”면서 “크리스토퍼가 오면 6개월 동안 겪었던 흥미로운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뻐했다. 그는 “크리스토퍼를 위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 동생 등 삼대가 마중 나왔다”며 웃었다.
오전 11시 엔터프라이즈가 귀항했다는 공식 신호인 “부웅!” 소리를 요란하게 내자 총사령관인 테리 크래프트 제독과 디 뮤본 함장이 순양함과 구축함 함장 등 지도부와 함께 내려와 귀항을 선언했다.
수병 6명이 먼저 하선했다. 이들은 기다리고 있던 부인과 포옹하면서 뜨거운 키스를 나눴다. 이어 항해 기간에 아이가 태어나 아빠가 된 수병 74명이 배에서 내려 가족과 상봉했다. 아빠가 떠난 지 한 달도 안 된 2월 7일에 태어난 딸 에바를 본 페리치 상사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아이 얼굴이 똑같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데크에서 일하고 있을 때 아이 출생 소식을 들었다”며 “e메일로 사진을 받았고 가끔 통화도 했다”고 말했다.
수병들이 모두 하선하는 시간만도 2시간 넘게 걸렸다. 엔터프라이즈는 6개월 동안 정비를 마치고 내년 초 다시 항해길에 나선다.
1년 365일 지구촌 전투현장에 항상 자국의 젊은이들을 보내야 하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국민이기에 겪는 이별과 재회의 현장이었다. ▼ 北 갈수있나… “명령만 떨어지면 세계 어디든 간다” ▼ 장수 비결은 “선체나 기계가 아닌 수병에게 있어”
“세계 어디든 즉각 출동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엔터프라이즈의 사명입니다.”
엔터프라이즈 총사령관 테리 크래프트 제독(사진)은 15일 귀항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까지 14번째 배치됐지만 이번처럼 역동적인 경험은 처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크래프트 제독은 “1월 13일 취역한 뒤 임무수행 중에 ‘중동 민주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면서 엔터프라이즈의 역할도 달라졌다”며 “노퍽을 떠난 지 한 달 만인 2월 14일엔 소말리아 해적에게 붙잡힌 요트 ‘퀘스트’를 구하기 위해 미사일 폭격기 ‘USS 벨케레이’를 급파했다”고 밝혔다.
크래프트 제독은 “곧 50세가 되는 엔터프라이즈의 장수 비결은 선체나 기계가 아니라 바로 항해사들, 즉 사람에게 있다”며 “항해사들이 엔터프라이즈를 전설적인 전함이 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1961년부터 지금까지 엔터프라이즈에서 복무한 수병은 25만 명에 이른다. ‘북한이 추가 도발할 때 한반도에 엔터프라이즈가 배치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계 어디든 언제든지 필요하면 배치될 수 있다. 우리는 명령을 수행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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