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정부가 북한과 비밀접촉을 했다거나 고위급 대화를 서두르고 있다는 보도가 일본에서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나카이 히로시(中井洽) 전 납치문제담당상은 지난주 중국에서 북한의 송일호 북-일 교섭담당 대사와 비밀리에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납치문제 진전 가능성이 보이면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연내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담판을 지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일본 정부가 6자회담 재개 이전에 북-일 대화를 갖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하루 만인 27일엔 마이니치신문이 ‘간 총리가 납치문제와 관련해 다음 달 중으로 북한과 협의하는 문제를 검토하도록 내각에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엔 일본 국내 정치적 요인과 외교 상황이 맞물려 있다. 일본이 북한과의 대화에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내 정치에서 폭발력을 가진 납치문제 때문이다. 납치문제는 정권 차원을 넘어선 ‘국가 대사’로,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내각에는 각 부처로부터 차출한 40∼50명 규모의 납치문제대책본부가 설치돼 있다. 총리가 본부장이다.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누가 총리가 되든 납치 피해자 가족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힘들다.
민주당 정권과 간 총리로선 바닥을 기고 있는 지지율과 총리 퇴진 압박에서 일거에 벗어날 카드는 납치문제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2002년 9월 북한을 방문해 납치 피해자 5명을 데리고 귀국한 다음 해 총선에서 자민당이 대승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납치문제 성과는 엄청난 정치적 자산이다.
외교적으로도 일본은 동북아 주도권을 미국 중국에 내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없고, 북핵문제에 가장 민감해하면서도 발언권이 없는 현실을 타개하고 싶어 한다. 경제력에 걸맞은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외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대북제재 일변도였던 일본이 남북, 북-미 대화가 성사되자마자 뒤질세라 북한 접촉에 적극 뛰어든 것은 이런 속사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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