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꽉 찬 회의실, 여기저기 터지는 카메라 조명, 후보자를 쳐다보며 양쪽으로 줄지어 앉은 의원 20여 명과 수십 명의 기자. 이명박 정부의 초대 장관을 지낸 A 씨는 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2008년 2월 인사청문회장에 입장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생전 처음 겪는 청문회의 압박감이 대단했다”며 “특히 온 국민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위원들이 사실이 아닌 의혹을 제기하면 감정이 울컥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평생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는데 이렇게까지 흠집이 났다는 생각에 정말 복장이 터지더라”고 말했다.
4일 인사청문회에서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는 형이 이명박 대통령과 친한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에 “사실무근”이라며 울먹여 민주당 박지원 의원으로부터 “대한민국 검찰총수가 돼서 그런 울먹임이 어떻게 평가될까 잘 생각하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2009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2010년 김황식 국무총리와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올해 3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눈물을 흘렸다.
후보자들은 가족에 대한 의혹 제기에 억울함을 호소하다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윤 장관은 배우자에 대한 투기 의혹을 해명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집사람이 가슴에 병을 앓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서울대 법대에 다니던 아들을 잃은 배우자에 대한 안타까움의 눈물이었다. 진 장관은 딸의 국적 포기에 대한 지적에 “분명히 나라를 위해 헌신할 아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전직 장관 B 씨는 “내가 아는 후보자 가족들은 예외 없이 청문회 동안 힘들어했다”며 “특히 후보자 부인들은 본인이 남편의 장관 임명에 걸림돌이 될까 조마조마해한다”고 말했다. A 씨는 “남편은 장관이라도 하지, 부인과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나. 부도덕한 가정을 만들어버리니 진짜 못할 짓”이라고 말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청문회가 끝나고 집에 가니 가족들이 날 붙잡고 엉엉 울더라”고 말했고 김준규 전 검찰총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아내가 ‘그것(총장) 해서 뭐하겠느냐. 사퇴하라’고 말하더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경환 의원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가족에 대한 의혹 제기는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문회에 대한 압박감은 대중 앞에 서는 것이 익숙지 않은 비(非)정치인 출신 후보자의 경우 더 심하게 느낀다. A 씨는 “장관 출신으로 인사청문회를 겪어본 청문위원들이 더 독하게 한다. 야당 의원으로 주목을 받기 위해 세게 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경제부처 전직 장관 C 씨는 “도덕성 흠집내기식 청문회가 끝나면 부하직원들이 임명된 장관을 어떻게 보겠나. 장관직 수행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인사 과정에서 청문회 때문에 안 하겠다는 인사도 많다”고 전했다. 이에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정책 청문회는 공개적으로 하되 사생활과 도덕성에 관련된 청문회는 비공개로 했으면 좋겠다”는 대안을 내기도 했다.
가족 문제 외에도 김 총리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유학 시절 현지에서 만난 파독 간호사와 광원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고 한명숙 국무총리는 과거 고문받던 장면을 회상하며, 최 위원장은 “언론탄압 이야기를 듣는 게 억울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들의 ‘눈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전직 장관 D 씨는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공식 청문회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 자체가 고위 공직자로서 자격 미달”이라며 “공직자의 가족이 검증 대상이 되는 것도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 야당 법사위원은 “후보자들이 눈물을 흘려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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