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중구 정동 대사관저에서 만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는 “조지타운대에서 글을 쓰고 (한국에서 즐겨 탄) 자전거도 가끔 탈 것이다. 그동안 받은 수많은 한국어 책들을 읽을 시간이 생겼다”며 웃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韓美親善平等互助(한미친선평등호조).’ 이임을 앞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기 위해 17일 찾은 서울 중구 정동 대사관저 접견실 문 위에는 이런 붓글씨가 걸려 있었다. 한국과 미국이 서로 친선하고 동등하게 서로 돕자는 뜻.
백범 김구 선생이 1949년 1월 주한 미국대사관의 그레고리 헨더슨에게 써 준 친필 휘호 사본이었다. 백범의 아들인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 선물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한미가 구축해 가야 할 관계의 비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아 감동받아 걸어놨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책을 한국에 일방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한국 국민들의 얘기를 들으려 했습니다. 제가 한국말을 듣는 게 더 잘되고 말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서툰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얘기할 때는 말이 빠르고 경쾌했다. 손짓도 커졌다. 대신 동해 표기 같은 현안에는 말이 느려지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북한 문제에 대해선 여러 차례 ‘실망스럽다’는 표현을 썼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이임 뒤) 내가 어디에 있든 FTA가 비준되면 그곳에서 기뻐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임기 동안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래전부터 잘 알던 한국이 민주주의, 경제, 문화적으로 활짝 꽃피는 모습을 목격하고 경험한 게 가장 만족스럽고 기뻤다. 내가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는 걸 한국 국민들이 알아줬다. 모든 게 완벽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반도에서 풀리지 않은 오랜 숙제도 있다. ‘한미친선평등호조’의 비전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한국 국민은 미국 지명위원회의 일본해 단독 표기 의견이 편파적이라 본다.
“난 미국 국가만큼이나 애국가를 많이 듣는 사람이다. 애국가 첫 소절이 어떻게 시작하는지 잘 안다. 애국가를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동해가 한국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을 한다. 미국은 동맹국이자 우방국인 한국과 일본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방법으로 해결하기를 기대한다.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 지명을 담당하는 미국 기관의 결정을 따르는 관행을 갖고 있다. 그 관행은 전 세계 어떤 지역이든 단일한 지명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국제기구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 이를 통해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대북 문제에서 더 많은 진전을 보이지 못해 안타깝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역사학자가 나중에 분석하겠지만 실망스럽다. 지난해 북한의 공격으로 한국인이 피해와 고통을 입었고 오랫동안 북한 주민들이 고통받고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이산가족들이 북한의 가족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안다. 인도적 차원에서 적십자사의 이산가족 상봉 노력을 지지한다. 6·25전쟁 때 북한 지역에서 사망한 미국 시민들의 소재 파악과 유해 발굴도 빨리 재개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스티븐스 대사는 블로그를 통해 공공외교를 활발히 펼쳤고 반응도 좋았다. 이 얘기가 나오자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내가 직접 쓰기도 하고 대사관 직원이 (내 말을) 녹음한 뒤 옮겨 쓰기도 합니다. 처음에 영어로 쓴 뒤 통역 직원이 자연스러운 한국말로 번역합니다. 한국말 공부는 할수록 애착이 커져요. 블로그에 쓰는 글은 다 내가 책임지는 글입니다.”
그는 “많은 한국인이 블로그에 와서 댓글을 달아줄 뿐 아니라 내 글을 주제로 대화가 이어져 감사하다. 블로그는 한국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장치였다. 2주 전 주말에 용평과 동강, 영월을 다녀온 뒤에는 40페이지나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이임 뒤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북한과의 협상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등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 현대사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는 “오늘 아침에 다녀온 김대중도서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곡절 많은 인생이 서린 사진들을 봤다. 한국 민주화의 여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여정을 쭉 지켜본 것은 큰 영광이었습니다.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여정에 조금이나마 참여한 사람으로서 경험을 돌아보고 한미관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