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9년 만의 러시아 방문]北 ‘以러制남’ 노림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2일 03시 00분


북한은 이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통해 러시아가 큰 기대를 갖고 있는 남-북-러 가스관 및 철도 연결 사업에 호응함으로써 경제지원을 얻어내고 핵문제에서 러시아를 자기 쪽에 끌어들여 6자회담에서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려는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 당국자는 21일 “러시아 지역개발 장관이 25일 북한 무역상과 경제공동위원회를 계기로 만나 가스관·철도 연결 사업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 사업을 통해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경제 부흥을 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애초 북한은 이 제안에 시큰둥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은 이 사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 사업을 실제로 원하기보다는 이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반대급부로 에너지와 식량 원조를 얻어내려는 속셈이라고 정부 당국자들은 보고 있다.

그만큼 북한의 경제 상황이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이 21일 러시아가 북한에 전력을 공급하는 프로젝트의 전력 공급원으로 꼽은 부레야 수력발전소를 방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스관 사업이 실현되면 북한은 연간 1억 달러가량의 통관료를 받을 수 있다.

러시아는 가스관 사업을 통해 대북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기대도 갖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6자회담이 진전돼야 이 구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소식통은 “가스관 사업 가능성이 높지 않다. 남북 관계가 좋았던 과거에도 그런 여건이 마련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북-러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이 열려야 러시아의 사업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세우며 조건 없는 6자회담의 조속한 개최에 러시아가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통해 남북한 사이에서 등거리를 유지해온 러시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중국에만 의존해온 대외관계를 확대하면서 대북 지원에 소극적인 중국을 자극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실제 북한은 남북, 북-미 대화 이후 일본, 러시아와 잇따라 접촉하며 전방위 외교에 나서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배편으로 액화천연가스(LNG)나 압축천연가스(CNG)를 들여오는 방식보다 가스관을 통해 천연가스를 도입하면 수송료를 3분의 1이나 줄일 수 있는 등 경제적 이점을 누릴 수 있다.

러시아의 전문가들은 북-러 회담의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외교전문지 ‘러시아 인 글로벌 어페어스’의 표도르 루키야노프 편집장은 20일 “북한 지도부가 핵 계획 포기의 대가로 가스관과 전력공급선을 연결하자는 제의를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제의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게 할 수는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핵 폐기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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