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30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배상 문제에 대해 정부가 구체적 해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피해 할머니들이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사과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헌법재판소가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 문제를 놓고 해결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함으로써 그에 따른 배상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군 위안부 문제는 1965년 6월 한일 수교 당시 이미 해결된 문제라는 태도를 보여 왔다. 한국 정부 역시 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 문제를 애써 외면해 왔다. 하지만 이번 헌재 결정으로 군 위안부 피해자 측의 배상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여 배상 문제는 양국 정부의 ‘발등의 불’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정부의 부작위(不作爲)는 위헌
한국과 일본이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의 부속협정인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는 “양국의 모든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이 조항을 들어 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이미 소멸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협정 제3조는 ‘이 협정의 해석과 실시에 관한 양국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하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중재위원회에 회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가 제3조에 명시된 절차에 따라 일본 정부와의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정부의 행정 부작위(不作爲·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일부러 하지 않음)를 위헌이라고 못 박았다. 국회가 법을 만들지 않았다는 입법부작위 위헌이나 정부가 시행령을 만들지 않은 것에 책임을 묻는 행정입법부작위 위헌은 있었지만 행정부작위 위헌 결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재는 특히 “한일협정에서 청구권의 내용을 명확히 하지 않고 ‘모든 청구권’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해 협정을 체결한 것에도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 피해 배상 길 열리나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일본군 위안부 중 생존자는 61명뿐이다.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에 끈질기게 사과와 피해배상을 요구해 왔다. 2004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은 끝났다. 일본 정부는 1994년 민간 차원에서 아시아여성발전기금을 조성해 위로금을 주겠다고 했지만 피해자들은 “정당한 배상을 원한다”며 거부했다. 그러자 정부는 정부예산과 민간모금액을 합쳐 일본이 지급하려 한 4300만 원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했다.
이번 위헌 결정이 피해자들에 대해 양국 정부가 피해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본으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배상을 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이 그 책임을 우리 정부에 물을 수도 있다.
○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정부
외교통상부는 이날 헌재의 결정이 나오자 “헌재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여 한일 간 외교 채널과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책임 있는 대응을 계속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외교부는 정부의 구체적인 노력이 미흡했다는 선고 내용에 대해 “법적 책임이 종결됐다고 계속 주장하는 일본과의 법적 논쟁 탓에 결론을 도출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이를 감안해 실질적 지원책을 강구해 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외교부 내에서는 “정부가 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처럼 헌재가 판단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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