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을 옭아맨 ‘단일화의 덫’은 사퇴한 후보가 쓴 선거비용이었다. 후보에서 사퇴할 경우 허공으로 날릴 이 돈을 보전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고는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킬 수 없었던 탓이다.
31일 동아일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6·2지방선거(교육감·교육의원 선거 포함) 당시 선거기탁금을 내고 후보로 등록했다가 사퇴한 후보는 87명이며 이들은 모두 55억7935만 원의 선거비용을 썼다고 신고했다.
1인당 평균 6413만 원을 쓰고도 선거를 완주하지 않아 국가로부터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 1억 원 이상을 쓰고도 사퇴한 후보는 모두 17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는 10% 이상 득표하면 실사를 거쳐 기탁금과 선거비용의 50%를, 15% 이상 득표하면 전체 기탁금과 선거비용을 보전해준다.
가장 많은 선거비용을 쓰고도 사퇴한 후보는 진보신당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였다. 심 후보는 당시 선거기탁금 5000만 원을 포함해 6억2387만 원을 쓰고도 선거일을 코앞에 두고 사퇴했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를 위해서였다.
심 전 후보는 통화에서 “나는 (유시민 후보 측에)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았지만 (대개는)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사퇴 후보의) 선거비용 보전 요구가 굉장히 심할 것”이라며 “내 경우 대부분 당원들이 모금한 돈으로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현재도 개인적으로 1억 원 이상 빚을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 ▼ 단일화 바람 분 6·2선거… 87명 55억 날려 ▼
전남도교육감 선거에 나란히 출마한 신태학, 서기남 후보도 각각 5억3792만 원, 4억3110만 원을 썼다고 신고했으나 단일화를 이유로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이들은 후보에서 사퇴한 뒤 김장환 후보를 지지했으나 김 후보는 진보진영 단일후보인 장만채 전남도교육감에게 밀려 낙선했다.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강상주 후보는 같은 무소속이었던 현명관 후보를 지지하며 선거를 1주일여 앞두고 사퇴했다. 당시 강 후보가 선관위에 신고한 선거비용은 3억6708만 원이다. 곽 서울시교육감에게 7억 원을 요구했다가 2억 원을 받은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는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3억2371만 원을 썼다고 신고했다.
박 교수가 선관위에 3억여 원을 신고하고도 곽 서울시교육감에게 7억 원을 요구한 점으로 미뤄 각 후보가 선관위에 신고한 선거비용이 실제 사용액보다 축소됐을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박 교수만 자신이 지지한 후보에게 뒷돈을 요구했겠느냐는 의혹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중도하차한 87명을 소속 정당별로 보면 국민참여당이 14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민주당 11명, 한나라당 8명, 민주노동당 5명 순이다. 무소속은 26명, 기타 정당 23명이다. 정당의 지원을 받지 못해 상대적으로 재정압박이 심했을 소수당이나 무소속 후보가 많다.
한편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중도하차한 후보는 전체 후보 1만20명의 0.9%였다. 이에 앞서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전체 후보 1만2227명 중 0.2%인 21명만이 후보 등록 뒤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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