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귀향 활동을 벌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13일 '바닥민심'이 악화하면서 내년 총선 전략에 비상이 걸렸다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 직후보다 민심이 더 나쁘다는 얘기도 나왔다.
민심이 여권에서 이반하면서 부산·경남(PK)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3선 이상 다선의원들의 물갈이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기반인 영남권에서는 '안풍(安風·안철수 바람)'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전망을 하면서도 불안한 시각을 감추지 못했고 일부 친이(이명박)계 의원들은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릴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추석 민심'을 계기로 당 개혁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민생 바닥권 추락…민심 이반 심화=한나라당 의원들은 민생이 팍팍해지면서 여권 전반에 대해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는 현실 인식을 공유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2004년 탄핵 역풍으로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이 거의 전멸했는데 지금 바닥민심은 그 때만큼 어렵다"고 전했다.
현기환(부산 사하갑) 의원은 "경제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알고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에게 표를 줬는데 상황이 나아지기는 고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보다 못하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더라"라며 "고환율 정책을 쓰고 감세를 해서 경제위기를 극복했는지 몰라도 서민경제는 바닥"이라고 전했다.
윤상현(인천 남구을) 의원도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을 외쳤는데 서민경제와 살림이 어려우니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과 강남, 지방을 막론하고 민생고의 핵심으로는 물가 불안이 꼽혔다.
정태근(서울 성북갑) 의원은 "재래시장, 골목시장에서는 물가 때문에 추석 차례상에 과일을 하나씩만 놓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했고, 이혜훈(서울 서초갑) 의원도 "시장에 가니 물가 얘기가 많고 못살겠다는 얘기만 한다"고 말했다.
이진복(부산 동래) 의원은 "시장 구석구석 다 둘러봐도 물건 보는 사람만 있지 정작 비싸서 사지는 않는다"며 "첫째 불만이 물가"라고 했다.
농축산물 생산지에서도 물가 상승의 혜택을 보기는커녕 생활고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김영우(경기 포천시·연천군) 의원은 "도시에서 물가가 비싸다고 하지만 정작 생산지에서도 죽겠다고 아우성"이라며 "올해 여름 수해 피해도 있고 구제역 여파도 있어 민생이 어렵다는 얘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조해진(경남 밀양시·창녕군) 의원은 "정부가 소비자물가 상승의 주범을 농산물로 지목, 농산물 가격을 때려잡기 위해 수입을 개방하다 보니 지역 민심이 굉장히 좋지 않다"며 "유통을 잡아야 하는데 소비자물가 오른다고 해서 산지 물가가 오르는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권성동(강원도 강릉) 의원은 "물가 부분에서 불만이 많더라"라며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무당파가 많이 늘었다"고 진단했다.
●'안풍' 주춤하나…정치 자성론은 봇물=서울·수도권 의원들은 '안풍'의 향배에 촉각을 세우면서 당의 개혁을 촉구했다.
그러나 영남권을 포함한 지방 의원들은 안 원장의 인지도가 현지에서는 매우 낮았고 '안풍'이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진복 의원은 "이번 명절에 만난 사람들 가운데 안 원장 얘기를 한 사람은 2명뿐"이라고 전했고 박민식(부산 북·강서갑) 의원은 "50대 이상은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대안으로 자리 잡은 것 같지 않아 의외였다"고 말했다.
조해진 의원은 "안 원장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심각하게 평가하지 않으면서, 모르는 인물이 갑자기 뜨는데 의아해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주영 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뒷좌석 운전자가 되지 말라'는 서양 속담을 인용, "뒷좌석에서는 잔소리하기는 쉬워도 막상 본인이 직접 운전해보면 현실은 이론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며 `한계'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윤상현 의원은 "정부ㆍ여당의 잘못에 대한 경종"이라고 분석했고 김영우 의원은 "근본적으로 당이 개혁하거나 대책을 내놔야지 넋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당이 너무 굼뜬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고 분발을 요구했다.
연휴 기간 호남 지역을 찾았던 이정현 의원은 "안철수 현상은 20여년 일당 독주해온 호남 정치의 변화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지역민의 반응에 대해 이혜훈 의원은 "그래도 박 전 대표가 되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 전했으나 조해진 의원은 "그 전과는 달리 '잘 돼야할 텐데…'식으로 불안감과 우려가 내포돼 있었다"고 전했다.
유기준(부산 서구)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말했다.
현기환 의원은 "안풍을 언론이 너무 부풀렸다고 지역민이 불만을 폭발시키더라"고 했고, 또 다른 영남권 의원은 "언론이 안 원장을 키워 박근혜 전 대표의 경쟁자로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다"고 현지 정서를 전했다.
●정치 '혐오' 여전…내년 총선 비상등=서병수(부산 해운대·기장갑) 의원은 "당에 환골탈태를 주문하는 것도 정치에 관심이 높은 계층의 얘기"라며 "대부분은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서상기(대구 북을) 의원은 "작년보다 더 민심이 안좋다. 총선을 앞두고 있어 불만을 더 쏟아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정태근 의원은 "어려운 상황이니 당이 더 잘 해야 한다는 격려도 있었다"고 말했다.
일부 의원들은 총선 '물갈이'를 언급했다. 한 의원은 "모임에 갔더니 '올드보이(다선 의원)는 지겹다'는 반응이더라"고 말했고, 영남권의 한 의원은 "누구누구는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돌고 있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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