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통령-빌 게이츠 대화록 전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5일 15시 09분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미국 방문의 마지막 일정으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겸 명예회장과 숙소인 웨스틴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게이츠 명예회장은 이 대통령의 숙소 호텔로 약속시간인 오전 6시45분에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찾아왔다. 80분간 진행된 두 지도자의 대화는 사회적 약자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사회 시스템 구축 등 공동 관심사에 초점이 맞춰졌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이 대통령은 식사를 반쯤 했지만, 게이츠 명예회장은 음료수 이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고 청와대측은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두 지도자가 대화에 집중하느라 식사에 손을 별로 못 댔고, 게이츠 명예회장은 다이어크 콜라 이외에는 식사를 못했다"고 설명했다.

# 에디오피아 봉사활동 에피소드

대통령: 반갑다. 우리가 다보스에서 만났을때 게이츠 회장이 부인 멜린다와 함께 부부가 아프리카에서 봉사를 하고 돌아왔다는 얘기에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나랑 만난 직후 다보스포럼에서 아프리카 등지의 질병퇴치를 위해 100억달러 규모의 백신개발과 보급계획을 발표해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도 해서 얼마전 에티오피아극빈지역을 방문, 봉사활동을 하고 귀국했다. 남아공에서 평창올림픽을 유치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는데 기쁨과 보람이 그 못지않았다.

게이츠: 대통령께서 저와 나눈 얘기를 다 기억하고 계시다니 놀랍다. 모든 걸 기억하시는 슈퍼 메모리 대통령이다. (웃음 : 다보스 포럼에서 게이츠 회장은 이대통령에게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도자 중 하나라며 ‘슈퍼 비지(super busy) 대통령’이라 표현한 바 있음)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지만 많은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는 흥미로운 국가다. 특히 에티오피아의 지도자들이 변화와 발전에 대한 수용성이 높다.

대통령: 특히 멜라스 총리의 개혁의지를 확인할 수 있어 반가웠는데 농토와 수로를 잘 개발하면 희망이 있다고 본다. 에티오피아는 한국과 같이 자원빈국이지만 한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나라다. 더욱이 한국전쟁에 참여한 에티오피아를 나를 비롯해 우리 한국국민들은 잊지 않고 있다.

게이츠: 그렇다. 에티오피아로서는 한국의 도움이 더욱 각별할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5세미만 유아사망률이 높았는데 백신을 잘 사용하여 지금은 유아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있다. 한국에 게이츠 재단이 후원하고 있는 IVI (국제백신연구소)가 있는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직접 방문하셔서 활동상황을 점검해 보시면 좋을 듯하다.

대통령: IVI에 관해 몇차례 보고를 받은 바 있는데 안그래도 귀국하면 한번 방문해 볼 계획이다. (김윤옥 여사는 IVI 활동을 후원하는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봉사와 나눔에 대한 자발적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시아권에서는 아직 기부문화가 좀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 나눔과 봉사,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노력

게이츠: 아직 많지는 않다. 그러나 변할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국가에서 부의 축적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래서 돈을 쌓아두고 재투자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어왔다고 본다. 그러나 진정한 재투자는 사회에 대한 공헌이란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인터넷 기업인 바이두의 로빈 리 사장은 금연운동을 위해 막대한 기부를 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 한국이나 일본, 중국보다 부유하지 않지만 기부문화에서는 적극적인 모습이다. 위프로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아즌 프렘지의 자선활동을 예로 들 수 있다.

대통령: 타타도 있지 않는가.

게이츠: 그렇다. 이 회사는 100여년전에 포드나 록펠러보다도 (2년)앞서서 나눔을 위한 비영리 재단을 설립해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대통령: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 나도 그 회사에 관한 책을 구해 읽어보고 있는데 한번 방문해 볼 계획이다.

게이츠: 대통령께서 취임한 이후 한국의 ODA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경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화한 매우 바람직한 롤 모델인데 국민들은 ODA활동을 지지하고 있는가.

대통령: 물론이다. 우리 국민들 참으로 위대하다. 금융위기로 경제가 어려워도 ODA를 늘리는 것을 반겨줬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여기까지 온 시발점이 원조라는 걸 국민들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도 솔선수범의 차원에서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동안 내가 번 사실상 전 재산을 사회에 헌납해 ‘리&김 재단(청계재단)’을 설립해 불우한 학생들에게 교육기회를 주는 장학사업 등을 하고 있다.

게이츠: 이대통령의 그 같은 퍼스널 리더십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게이츠회장이 헌납한 재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다. (웃음)

# 게이츠재단, 원조효과성 높이기 위해 한국정부와 협력

게이츠: 국제사회에는 원조의존증(Aid Dependency)이란 말이 있다. 한번 원조를 받으면 계속 받게되는 경향을 얘기하는데 한국은 이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한 모범(best example)이다.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대통령께 여러모로 깊은 감명을 받고 있다. 오는 11월 부산에서 개최되는 원조회의 (한국정부와 OECD가 공동주최하는 세계최대규모의 세계개발원조회의를 지칭)에 제프 램 (Geoff Lamb, 게이츠 재단의 공공부문 국제협력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을 파견해 한국정부와 국제원조와의 공동협력방안을 마련토록 할 계획이다.
대한민국의 경험,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대통령의 경험을 국제사회와 더 많이 공유해 원조의 효과성(Aid Effectiveness)을 높였으면 좋겠다.

대통령: 그렇게 하자. 서울에서 주최한 G20회의에서 국제협력을 새로운 의제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인데 국제사회에서 정부와 민간이 서로 힘을 모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한국정부도 게이츠 재단과 적극 협력해 어려운 나라, 어려운 분들을 도울 것이다.
그런데 게이츠회장은 요즘 어떤 봉사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는가.

게이츠: 폴리오(소아마비) 박멸에 몰두하고 있다. 백신이 기적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나이지리아를 비롯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폴리오 박멸 중점국가로 삼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지금 퇴치하지 못한다면 자꾸만 인근국가로 퍼지는 현상을 막지 못한다. 그래서 다음 주에 나이지리아를 직접 방문해서 효과적 원조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추가 지원책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소아마비 퇴치를 위한 전략을 통해 크게 성공했지만, 완전히 박멸하지 못하면 완전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이들이 언젠가는 또 확산될지도 모른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금까지 있어왔던 전략이 아닌 다른 새로운 접근법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폴리오가 박멸되면 그거야 말로 게이츠회장의 공로라 하겠다.

게이츠: 아니다 저도 로터리 클럽을 통해 그 중요성을 배운 것이다. (로터리 클립이 이 문제를 제기 했을 때) 나는 기업을 일구느라 사실 정신이 없었고 나중에 알게 된 것 임

대통령: 나도 로터리클럽 회원이었는데 그럼 우린동문이다. (웃음)한국의 경우 2만명 이상이 해외에 나가 열심히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에티오피아에 가봤더니 기독교단체에서 의사를 파견해 눈 못뜨는 사람들에 대해 무료로 개안수술을 해주고 있더라. 직접 그 병원을 방문했는데, 그때 수술을 받고 시력을 회복한 어느 에티오피아인이 우리를 보더니, ‘당신이 내 눈을 뜨게 한 예수이신가?’라며 눈물을 흘리더라.

게이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는가. 한국은 역시 대단한 나라다. 우리 재단에서는 매년 20억달러씩 지원을 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결국 봉사와 헌신의 자세를 갖춘 사람들이다.
아프리카 많은 나라 가정에서는 유아사망률이 높기 때문에 아이들을 많이 나으려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를 많이 낳음으로써 살아남는 아이들의 확률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신접종을 통해 유아사망률이 점차 낮아지면서 오히려 요즘에는 아이를 적게 낳아 문제가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인구가 감소하는 국가에서는 지속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8억명 인구가 5세미만이다. 전세계의 부가 늘어나도 빈국의 아이들은 더 가난해지는 역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런점에서 우리 재단과 한국정부와 협력할 영역이 많다고 생각함. 최빈국을 지원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효과적인 지원방안을 모색해서 이를 실천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우리 재단과 한국정부가 더 논의하길 바란다.
게이츠 재단이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이러한 재단보다 정부가 훨씬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할 수 있다.
부산 원조회의에서의 성과를 여러모로 기대한다. 제프 램 (Geoff Lamb)을 보내 한국과의 협력을 도모토록 하겠다.

# 공생발전과 IT산업, 한국의 소프트웨어 기업
글로벌 시장으로 연결되야

대통령: 그렇게 하자. 남을 돕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돕는 것과 같다. 그것이 최근 내가 강조하고 있는 공생발전의 핵심이다. 국제사회뿐 아니라 산업생태계에도 공생발전의 필요성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게이츠회장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비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인데...

게이츠: 한국은 세계최고수준의 브로드밴드를 갖고 있고 통신에서 전자에 이르기까지 혁신적 기업들이 많다.
소프트웨어 분야에도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정말 많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창의력과 잠재력이 대단히 뛰어나고 대학생들도 인재가 많은 걸 잘 알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한국 등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경진대회 등을 실시)
다만 불행하게도 이들 중소기업과 젊은 인재들이 글로벌한 시장으로 나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부와 대기업들은 이들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생태계가 되도록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 최근 국제적으로 특허분쟁이 많이 발생하는 모양인데 사실 한국에 유능한 기술 인력들이 많아서 예로부터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기술이 다수 모두 한국에서 개발되고 테스트 되었다. 그러나 게이츠 회장이 지적하듯 한국의 기업들은 이런 새로운 기술들을 제대로 전 세계적으로 마케팅하고 발전시키지 못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선 이 점을 잘 성찰해 야 할 것이다.
게이츠 회장은 더이상 마이크로소프트의 공식 경영자는 아니지만 IT세계에서 앞으로 다가올 가장 큰 건 뭐라고 보는가.

게이츠: 오늘(현지 시간) 공교롭게도 삼성전자의 최지성 사장과 스티브(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가 만나는 것으로 아는데 내 입장에서는 ‘윈도우 8’ 출시가 제일 큰 거다 (웃음)
애플의 경우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개발하는데 반해 마이크로 소프트는 삼성과의 파트너쉽을 통해 새로운 타블렛을 개발코자 노력 중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제일 중요한 파트너다.
# 한-미 자유무역은 모두에게 이익, 용기있는 리더십 절실

게이츠: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위해 대통령께서 보여준 리더십에 감사 드린다. 한-미 자유무역은 양국 모두에게 더 나아가 세계경제 전반에 이익이 되는 일이다. 일부 제품 생산자는 로비를 하지만 일반 소비자는 로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자유무역에 문제가 있는 듯 보이지만 그 혜택은 사실 모두가 누리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부 이해집단을 뛰어넘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는 대통령은 용기 있는 지도자다.

대통령: 사실 한-미 FTA를 위해 미 상하원 지도부에 전화를 걸어 직접 호소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틀 전 오찬에서 서로 노력하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게이츠 회장이 말하듯 한-미 FTA는 양국 모두에 윈-윈이 될 것이다. 예컨대 GM자동차가 ‘볼트’라는 전기자동차에 몰두하고 있는데 알다시피 여기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한국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양국 기업이 국경을 넘어 협력하며 일자리를 늘리는 시대가 된다. 서비스 분야에서도 양국간에 큰 기회가 열릴 것이다.

게이츠: 한국인의 능력과 기술이 탁월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교육도 세계적 수준으로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능력도 모두 뛰어나다. 미국이 한국과 교류를 확대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 기후변화와 녹색성장 협력, 새로운 에너지 개발이 관건

대통령: 지금 세계 각지에서 자연재해와 재난이 일상화되고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기후변화가 그 직간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환경파괴는 물론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가져오고 있다. 여기에 선제대응하면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래서 녹색성장을 하자는 거다.
재난을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절약한 재정을 최빈국 개발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 효과도 엄청날 것이다. 대한민국이 뜻을 같이 하는 국가들과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GGGI)를 설립한 배경도 거기에 있다.

게이츠: 저 역시 이 문제(기후변화)의 중요성, 그리고 이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강력히 믿고 있는 사람(complete believer)임. 그래서 게이츠재단과 별도로 에너지 문제에 대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는데 재생에너지를 비롯 새로운 에너지의 연구개발이 그 핵심이다.
원자력은 당분간 가장 현실적이고 깨끗한 에너지로 남을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과 차원이 다른 뉴 디자인, 차세대 원전이 필요하다. 현재 이러한 차세대 원전 개발에 많은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하고 있다.

대통령: 새로운 재생에너지가 현실성있는 수준으로 발전되려면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새로운 에너지가 현실화될 때까지는 원자력이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서 사용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태양과 바람 등에 바탕을 둔) 자연에너지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과 녹색성장을 위해서도 상호협력을 기대한다.

게이츠: 그렇게 하겠다. 시애틀을 방문해 함께 나눈 귀한 시간에 감사드림.

대통령: 게이츠 회장과 얘기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기쁨.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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