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은 27일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10여억 원을 제공했다는 이국철 SLS그룹 회장 주장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검찰의 수사 착수는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청와대에서 주재한 정부 내 사정기관 회의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청와대가 대통령 측근의 의혹을 확산시킨 이 회장의 주장에 대해 검찰 수사를 통해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권력형 비리나 가진 사람의 비리를 아주 신속하고 완벽하게 조사해 달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말 이대로 갈 수는 없다.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이면 가까울수록 더 엄격히 다뤄야 한다”며 측근 비리 의혹에 실망감을 표시하면서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정국을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이 대통령은 김두우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과 신 전 차관의 비리 의혹을 놓고 “(사적인) 인간관계와 (엄정해야 할) 공직생활을 구분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직생활은 새로운 각오로 해야 한다. 대통령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명심해야 한다”며 심기일전을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힘, 권력, 돈을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비리를 더 저지른다”며 “이것을 벗어나지 못하면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친인척과 측근 비리를) 철저히 예방하고 대처하는 방안을 관계부처가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청와대에서 임 실장 주재로 ‘권력형 비리 근절을 위한 유관기관 대책회의’가 열렸다. 청와대는 이 회의에서 대통령 측근의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의혹이 제기되는 초기에 수사를 통해 진위를 적극 가리기로 했다. ▼ 한나라 “이국철 거짓말 밝혀질 것” 수사착수 환영 ▼
또 대통령 측근의 비리 연루 가능성을 점검하는 이 회의체를 청와대 주도로 정례화해 월 2회 개최한 뒤 논의 결과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날 대책회의엔 법무부, 감사원, 국세청, 경찰청, 국무총리실, 금융감독원 등 사정기관의 책임자가 빠짐없이 참석했다. 임 실장이
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은 측근 비리 확산이 부를 민심 이반을 청와대가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지를 방증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평시라면 생각할 수 없는 고강도 조치가 나올 정도로 청와대가 절박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통령 측근 비리로 제한한다”고 선을 긋기는 했지만 의혹 제기 초기부터 검찰이 수사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놓고 의외라는 반응도 나온다. 검찰은 통상 ‘설(說)’만으로는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다고 설명해 왔다.
이 회장이 실명을 거론하며 “금품을 줬다”고 지목한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임재현
대통령정책홍보비서관은 이날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 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형사고소하고, 서울중앙지법에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신재민 전 차관의 의혹에 대해 “검찰이 밝혀내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전날 비공개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 회장은 현재 ‘패닉’ 상태다. 자기가 보기만 한 사람에게는 다 돈을 줬다고 폭로하는 수준”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결국 신속한 수사로 ‘이국철의 입’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확인하면 상황이 반전될 것임을 한나라당은 기대하고 있다. 이
회장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진의장 전 경남 통영시장이 최근 무죄 판결을 받은 점도 한나라당이 자신감을 얻은 요인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수사 의지에 대해 “측근 실세들의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려는 진정성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고 평가 절하했다. 이용섭 대변인은 논평에서 “임기 말 부패나 권력형 비리를 덮고 가려는 의도라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 차원의 회의체 구성에 대해 “‘측근 비리 은폐기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국민의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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