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이 떠난 서울시가 한 달 넘게 표류하고 있다. 오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26일 사퇴하면서 그가 추진했던 각종 정책은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상당수 사업은 아예 중단됐다. 대규모 국제행사는 취소됐고 공공요금 인상처럼 시민생활과 직결된 사안은 아예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10월 26일 보궐선거까지는 ‘선장을 잃은 서울호(號)’는 표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행사 줄줄이 취소, 이미지에도 타격
오 시장 사퇴의 직격탄을 맞은 것은 9, 10월 열리는 서울시 행사들이다. 상당수 행사는 시장이 없다는 이유로 취소됐다. 2001년부터 매년 열려 왔던 서울국제경제자문단(SIBAC) 총회도 취소된 행사 중 하나다. SIBAC 총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참가하는 행사로 서울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리처드 스미스 뉴스위크 회장과 고가 노부유기 노무라증권 회장, 당시 차기 영국 통상투자장관으로 지명된 스티브 그린 HSBC그룹 회장 등이 참가했다. 서울시는 다음 달 26, 27일 행사를 열기로 하고 7월부터 참석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냈지만 보궐선거일(26일)이 당일이어서 28명의 해외 위원들에게 행사 취소를 통보했다.
지난달 중순에는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미국인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서울 방문 일정이 백지화됐다. 그는 서울의 초중고교생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열어 우주개척에 대한 꿈을 이야기할 계획이었다. 이 행사는 오 전 시장에게 보고 됐고 오 전 시장은 주최 측에 “서울시를 방문하면 적극 환영하겠다”며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방한 이틀을 앞둔 26일 행사를 기획했던 주최 측은 “내한 계획을 미뤘다”고 서울시에 통보했다. 주최 측은 “암스트롱을 맞이하는 시장이 없고 분위기도 좋지 않아 취소를 결정했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통보를 받아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개최하려던 행사들도 차질을 빚었다. 21일부터 3일 동안 중국 충칭(重慶) 시안(西安)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해외 주요도시 서울 관광 설명회’는 취소됐다. 중국 양저우(揚州)에서 열린 ‘글로벌 디자인도시 서밋’이나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국제 건축가 총회’처럼 오 전 시장이 참석하기로 한 국제 행사에는 다른 직원이 대신 참여했다.
○ 주요 사업 추진도 미지수
서울시의 대표적인 국제행사인 서울국제경제자문단(SIBAC) 총회(2008년) 모습. 2001년부터 매년 열린 SIBAC 총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참여하는 국제적 경제자문회의다. 올해는 서울시장이 공석이어서 11년 만에 처음으로 총회가 취소됐다. 동아일보DB오 전 시장이 이끌던 민선 4, 5기 주요 정책 사업들의 운명도 불투명해졌다. 2014년까지 6735억 원을 투자해 완공할 예정이었던 한강예술섬 사업을 비롯해 서해뱃길 사업, 9988 서남권 어르신 행복타운 건설, 무상급식 계획 등은 새 시장이 선출돼야 내년 예산 편성을 논의할 수 있다. 한문철 서울시 경영기획관은 “정치적으로 논란이 됐던 대규모 사업들은 시장이 없는 상황에서 임의로 예산 편성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야권 후보가 당선될 경우 이 사업들은 아예 좌초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지하철 성범죄를 막기 위해 서울시가 19년 만에 도입을 추진 중이던 ‘지하철 여성 안전칸’ 제도는 최근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이 제도는 오 전 시장이 강하게 추진하려던 정책으로 전동차 내부 폐쇄회로(CC)TV 설치, 지하철 보안관 제도와 함께 ‘지하철 3대 안전 대책’ 중 하나였다. 대중교통요금과 상하수도요금의 인상 방안도 새 시장이 오기 전까지 논의가 진전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시민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대민서비스에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한강르네상스 사업처럼 정치적 논란이 있었던 사업은 추진동력을 잃게 돼 결론적으로 예산의 비효율적 운영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적인 이유로 사퇴를 하기 전에 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새 지자체장이 오면 정치적 차별화를 위해 전임자가 벌인 사업을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어 시민의 혼란과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며 “지자체의 정책 연속성을 제도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해 국가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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