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순수한 나눔 아니면 문제” VS 박원순 “공무원이 선거 개입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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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시민단체 기부’ 거론… “상당히 심각한 발언” 역공 나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시민후보’로 나선 박원순 변호사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아름다운재단이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은 것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 쟁점으로 번지고 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2일 기자들과 만나 대기업의 시민단체 기부금에 대해 “나눔의 차원에서 순수하게 줬다고 하지만 혹여 순수한 나눔 차원이 아니면 굉장히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국회의원 시절 자신의 경험을 언급하면서 “대기업은 총수들을 청문회에 나오게 하거나 (대기업을) 힘들게 하는 법을 만들면 후원회에 찾아온다”며 “이는 짧은 이해관계만을 염두에 둔 것으로,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안 좋은 태도”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대기업의 나눔 및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순수하지 않은) 유형의 나눔보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하도급 쥐어짜기 등을 하지 말고 공생 발전할 수 있도록 공정한 거래를 하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아름다운재단이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140억 원이 넘는 돈의 성격은 나는 모른다. 기업이 순수하게 좋은 뜻에서 했으리라 믿고 싶다. 이런 게 자꾸 시비가 걸려 기업의 나눔이 위축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자신의 발언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차단하려 했다.

그러나 박 변호사는 이날 임 실장의 발언에 대해 “선거 중립 의무가 있는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한 것”이라며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야권후보 초청토론회에 참석해 ‘대기업의 시민단체 기부금 지원이 순수한 나눔의 차원이 아니면 문제 될 수 있다’는 임 실장의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를 지낸 그는 “참여연대 시대의 박원순은 재벌개혁의 선봉에 섰고, 아름다운재단 시절 박원순은 재벌과 대기업을 사회에 공헌하도록 유도하는 데 역할을 했다”며 “두 과제는 분리돼 있고 단계적으로 추진해 왔다”고 강조했다.  
▼ “사진전 연다며 불쑥 3억 달라니…” ▼
대기업들, NGO 후원요청에 몸살… 사실상 準조세


반면 재계는 임 실장의 문제 제기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기업 비판하는 시민단체 중에서 기업 돈 안 받는 곳은 거의 없다. 아름다운재단뿐이 아니다. 웬만한 시민단체는 다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주요 대기업은 시민단체에 주는 돈을 사실상 ‘준(準)조세’로 여긴다. 지난해 말 한국조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연간 매출액 300억 원 이상인 국내 기업이 이처럼 비자발적으로 부담하는 각종 기부금은 2009년 한 해 동안 3500여억 원에 이른다. 4대 그룹 관계자는 “이왕 쓰는 사회공헌비용이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돼야 하는데 시민단체 후원금 대부분은 큰돈을 들여도 빛이 안 난다는 점이 더욱 부담”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재계에 따르면 최근 시민단체들은 공식적 기부금보다는 단발 프로젝트나 기획성 이벤트에 기업의 이름을 걸어주겠다며 협찬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A 대기업의 홍보 임원은 “자체 후원회 등 행사를 앞두고 찾아와 후원을 요청하는 시민단체가 많은데 일부 양심적인 곳은 ‘몇천만 원 이상은 안 받는다’며 상한선을 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무턱대고 ‘들이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후원금을 내지 않으면) 시민단체들이 오너 관련 이슈나 환경 문제로 두고두고 직간접적으로 괴롭히기 때문에 대기업들은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한 시민단체는 지난해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사진전을 연다며 주요 그룹에 공문을 보내 2억∼3억 원의 협찬금을 요구했다. B 대기업의 사회공헌부서 관계자는 “전시회장 임차료나 표구비 등 모든 경비를 다 합쳐도 수천만 원이면 충분할 사진전에 억대의 협찬을 요구하는 것은 ‘어느 한 곳이라도 곧이곧대로 돈을 내주면 남는 장사’라는 생각에 크게 지르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급성장한 좌파 성향 시민단체들의 후원금 요구는 현 정부 들어서는 크게 줄어들었다. B사 관계자는 “요즘에는 돈을 달라고 하는 빈도 자체가 확 줄었고, 시민단체들도 돈을 안 줘도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혀 검증되지 않은 시민단체가 여전히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고 그 수가 지나치게 많을 뿐 아니라 요구의 강도도 세다는 것이 기업들로서는 고민이다. C 대기업의 한 임원은 “‘공익 목적으로 쓸 돈을 모으기 위해 바자회를 열 테니 회사 사옥에 자리를 내달라’는 황당한 요구도 종종 받는다”며 “성화에 못 이겨 허락해 줄까 하다가도 비슷비슷한 단체가 너무 많아 뒷감당이 안 될 것 같아 매번 어렵게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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