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선 D-21]“디지털 몽골기병이 제1야당 앞마당에 게르를 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5일 03시 00분


야권 통합후보 경선 결과 ‘기존 정당의 위기’ 전문가 분석

3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범야권 단일 후보 선출 시민참여경선이 치러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 손학규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투표장 밖을 돌며 민주당 후보인 박영선 의원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그 시각 이른바 ‘시민후보’인 박원순 변호사는 투표 참여자들과 어울려 투표 ‘인증샷’을 찍으며 놀이판을 벌였다. 이 사진은 실시간으로 박 변호사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전파됐고 박 변호사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냈다.

경선 다음 날인 4일 박 변호사는 트위터에 “캠프 사무실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엄청난 박수를 받았습니다. 누구신지 보세요”라며 사진을 올렸다. 사진의 주인공은 경쟁자였던 박 의원. 자연스레 민주당 지지층 껴안기에 나선 것이다.

이번 경선에서 탄탄한 조직력의 민주당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반의 선거 운동으로 맞선 시민사회 세력과의 경선에서 패하면서 야당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1987년 이후 유지돼 온 지역과 이념에 바탕을 둔 기성 정당 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시장에서 경쟁력 없는 상품을 팔았던 기업이 망하고,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며 기존 정당의 몰락 가능성을 경고했다. 야권에서는 이번 경선 결과를 놓고 “전통 있는 ‘굴뚝기업(제조업체)’을 신생 벤처기업이 뛰어넘은 격”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은 여론조사뿐만 아니라 시민참여경선에서도 박 변호사 측에 사실상 밀렸다. 총동원령 속에 각 당원협의회별로 버스를 타고 온 당원들이 투표에 대거 참여했지만 이에 맞서 디지털로 무장한 박 변호사 지지자들이 어디선가 몰려들어 투표장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디지털 몽골기병이 순식간에 초원을 넘어와 제1야당의 앞마당에 ‘게르(몽골 전통가옥)’를 치고 승리를 굳혀버린 것이다.

이들은 디지털의 속도에 아날로그의 감성을 입힌 e폴리틱스(정치)의 세계를 선보였다.

박 변호사 지지자들은 SNS를 통해 “투표장에 나와 민주당을 이기자”는 글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폭풍 참여’하러 오신다고 하네요” 같은 사적이고 정서적인 메시지를 퍼뜨렸다. 이는 기성 정치권의 문법과 전혀 달랐다. 경선장에 모인 박 변호사 지지자들은 당원이 아니라 트위터의 ‘팔로어’에 가까웠다.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박한우 교수는 10·26 서울시장 선거는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 대(對) 인터넷 웹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SNS 공간에서 스마트폰 등 모바일에 기반을 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선 박 변호사를 따르는 20, 30대가 강세인 반면 인터넷 웹상의 인터넷카페 등에선 한나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중장년층의 활동도 활발하다는 것이다. 정치의 중요한 장이 현실 세계에서 SNS 공간으로 넘어가면서 기존 정당에는 곤혹스러운 상황인 것만은 틀림없다.

물론 기존 정당의 근원적 위기는 그동안 반복되어온 아날로그적 행태, 후진적 정치문화에 기인한다.

강 교수는 “그동안 정당은 사람들이 원하는 정치적 요구를 수용하는 데 한계를 보이면서도 선거 같은 제도적 틀로 기득권을 누려왔지만 이제는 스스로 환골탈태하고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정당,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당으로 근원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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