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할아버지에 대한 징용장이 날아왔고 할아버지 대신 작은할아버지가 사할린으로 징용을 갔다. 작은할아버지가 사할린에서 실종되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자손이 없는 작은할아버지의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내주기 위해 양손입적을 결정했다.”
무소속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측은 아들이 없는 작은할아버지의 양손자로 입적된 뒤 ‘부선망독자(父先亡獨子·부친을 일찍 여읜 외아들)’로 8개월간 보충역으로 복무한 것을 놓고 병역단축 의혹이 제기되자 이렇게 해명했다.
그러나 동아일보가 확인한 결과 창원지법 밀양지원은 2000년 6월 작은할아버지에 대한 ‘실종선고’ 심판문에서 “부재자(작은할아버지)를 1936년 10월 31일 이후 생사가 불명인 것으로 인정한다”고 실종선고를 내렸다. 이 같은 선고는 박 후보가 2000년 실종선고 청구 당시 작은할아버지의 실종 시점을 1936년으로 신고했음을 입증한다. 1936년부터 실종됐다면 1941년 징용됐다는 그동안의 설명은 사실이 아닌 셈이다.
1941년 작은할아버지가 강제 징용됐다고 해명한 박 후보가 실종선고를 청구하면서는 왜 1936년부터 실종됐다고 했는지 소명해야 할 대목이다. 당시 재판부는 “1999년 12월 16일부터 공시최고기일인 2000년 6월 25일까지 부재자에 대한 신고가 없었다”며 “부재자인 박○○은 실종돼 1941년 10월 31일까지 실종기간이 만료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박 후보는 심판문의 송달 기간을 거쳐 2000년 7월 13일 법적으로 작은할아버지의 호적을 승계했다.
한나라당도 이날 병역 기피 의혹에 대한 박 후보의 해명은 거짓말이라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신지호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작은할아버지가 형을 대신해 사할린에 강제 징용됐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 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박 후보가 호적 조작도 모자라 가족사까지 조작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근거 자료로 일제 강제징용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기록된 부산고등법원 제5민사부 판결문을 제시했다. 그는 “판결문을 보면 일본은 전쟁으로 인력과 물자가 부족해지자 1939년 7월 8일 국가총동원법에 따른 국민징용령을 제정했지만 한반도 등 외지에 대해선 칙령 제600호에 의해 1943년 10월 1일부터 국민징용령을 실제로 적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939∼41년 기업체 모집과 1942∼43년 조선총독부 알선 뒤에 1944년부터 강제징용이 있었다”며 “박 후보의 할아버지가 1941년에 징용영장을 받았다는 것은 거짓 주장이고, 작은할아버지가 사할린으로 갔다면 모집에 응해서 간 것이지 형의 징용영장을 대신한 것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장윤석 의원도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박 후보가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관행처럼 양손자로 입양됐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보통은 호적에 등재하지 않고 족보에 이름을 올려 제사를 지내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 후보 측 우상호 대변인은 “신 의원이 지난해 2월 공동 발의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안’에도 국외강제동원 희생자를 ‘1938년 4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 일제에 의해’ 국외로 강제 동원된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다”며 “네거티브에 몰두해 역사적 사실조차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우 대변인은 “신 의원이 주도하는 뉴라이트 인사들이 주축인 ‘교과서포럼’에서 출판한 대안교과서에도 강제징용이 193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는 내용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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