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있는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 모스타르 분교(UWCiM)’의 학생이 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손자 김한솔 군(16)은 학교에서의 첫날인 13일 보스니아 현지 TV에 입학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이날 모스타르에 있는 UWCiM 기숙사에 입주한 김 군은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현지 TV에 촬영됐다. TV 카메라를 피하기는커녕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UWCiM을 대표한 야스민카 브래디치 씨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김한솔 학생이 학교에 도착했다”며 “김 군은 우리 학교에서 2년간 머무르며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김 군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달라”며 “그는 다른 모든 학생과 같은 보통의 학생이며 같은 조건하에서 똑같은 거주 여건과 음식을 제공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김 군의 UWCiM 입학은 학교네트워크의 본부인 UWC가 북한과 갖고 있는 특별 교육협력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라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학교 관계자들은 “김 군이 밝고 활달하게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고 전했다. 발렌티나 민돌예비츠 UWCiM 교장은 “김 군이 보스니아에 좋은 인상을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UWCiM은 보스니아 내전 때 피해를 많이 받았던 모스타르 지역의 재건과 화합을 상징하기 위해 2006년에 설립됐다. 본교인 UWC는 1962년 영국에서 개교한 기숙학교 형태의 국제학교로 현재 싱가포르 등 12개국에 분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김 군이 홍콩과 가까운 싱가포르에도 UWC 분교가 있는데 왜 굳이 보스니아 분교를 택했는지, 그리고 수많은 기숙형 국제학교 가운데 굳이 UWC를 고집했는지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선 재학생 중에 외교관, 다국적 기업 임원, 개발도상국의 주요 정치인 자녀들이 많은 UWC의 학생 구성이 김 군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 많다. 교사나 학생들이 자신을 특이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외신에 따르면 김 군은 기숙사에서 첫 밤을 보낸 12일 친구들과 쉽게 친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민돌예비츠 교장도 “김 군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홍콩에 있는 리포춘UWC 입학이 좌절된 뒤 UWCiM을 택한 것은 보스니아가 서방국이 아닌 데다 지방 도시에 있으며 외국 학생끼리만 폐쇄적인 기숙사 생활을 한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또 알바니아 체코 코소보 중국 리비아 레바논 몬테네그로 이란 팔레스타인 등 비서구권 출신 학생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김정남의 향후 계획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김정남은 내년에 마카오 생활을 청산하고 유럽으로 본거지를 옮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스티븐 코드링턴 전 리포춘UWC 교장은 “김한솔이 유럽 학교를 선택한 건 김정남의 동선과 관계있는 것으로 안다”며 “김정남이 내년에 유럽에서 일하기로 했으며 김 군은 부모와 가까운 곳에서 학교를 다니길 원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김정남이 김 군을 홍콩UWC에 전학시켜 옆에 두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홍콩에선 입학허가를 내주지 않으니 일단 UWCiM에 입학시켰다가 자연스럽게 홍콩UWC로 전학을 하는 우회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김 군의 UWCiM 입학이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대목은 북한 로열패밀리의 유학 관례를 따르지 않은 점이다. 성혜림의 소생인 김정남과 고영희의 소생인 김정철, 김정은 등 김정일의 아들들은 모두 스위스에서 유학을 했다. 스위스는 중립국이며 치안도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신변 안전에 민감한 김정남은 아들이 스위스에 가면 감시를 받는다고 판단해 아들의 스위스 유학을 막았을 가능성이 크다.
홍콩 당국이 김 군의 학생비자 발급을 막은 이유도 미스터리다. 리포춘UWC는 지난 7년간 북한에 학생 대표를 보내는 등 북한 학생 유치에 적극적이었고 학교 역시 김 군을 입학시키기 위해 이민국에 수차례 비자 발급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이 홍콩에 김 군의 비자 발급을 거부하라고 요청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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