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의 마지막 나날들]“하수관 속 공포에 질린 카다피… 총든채 내게 ‘무슨 일이냐’ 물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4일 03시 00분


■ 카다피 최초 생포한 샤반 씨

스물한 살의 리비아 청년 오므란 샤반(사진)은 순식간에 리비아의 영웅이 됐다. 샤반은 20일 리비아 수르트에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경호원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부상한 카다피를 생포한 청년이다. 미스라타의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다 카다피군의 만행을 보고 총을 들게 된 열혈청년 샤반은 22일 미스라타 남부의 한 부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카다피를 어떻게 발견했나.

“미스라타 출신들로 구성된 우리 부대는 수르트 남쪽에서 총공격을 하고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해안 도로 쪽에서 카다피군이 있는 방향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공격을 받고 버려진 군 차량을 대거 발견했다. 인근을 수색하던 중 공장 옆 하수관 2개를 봤다. 마침 버려진 차량 행렬에서 카다피가 도망쳤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 때였다. 그런데 하수관 쪽에서 총격이 시작됐다. 우리도 그에 맞서 총격을 가하니까 다시 반격이 왔다. 교전이 이어지다 하수관 쪽에서 총격이 멈췄다. 가장 가까이 있던 내가 그쪽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더니 하수관 앞에 2명의 시체가 있었고 관 바로 안에 카다피가 있었다. 순간 너무 놀랐다. 카다피는 교전에서 어깨, 등을 다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카다피가 당신에게 뭐라고 했나.

“그는 총을 든 채 ‘무슨 일이냐’고 말했다.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순간 내가 먼저 카다피를 덮쳐 두 팔을 잡았고 이어 달려온 내 친구와 함께 그를 끌고 나왔다. 그리고 상관에게 ‘부상한 카다피를 생포했다’고 보고 했더니 ‘구급차로 미스라타로 옮기겠다’는 답이 왔다. 순식간에 동료 병사들이 몰려들었고 조금 뒤 앰뷸런스가 도착한 곳으로 부대원들이 카다피를 끌고 가는 것까지 봤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총소리가 들린 것 같다. 어디서 난 소리인지는 확실치 않다.”

―어떻게 과도정부군에 가담하게 됐나.

“미스라타에 카다피군 병사들이 탱크와 함께 들어와 아이들을 총으로 죽이는 장면을 봤다. 믿을 수 없었다. 그때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반군에 가담하겠다고 결심했다.”

부대원들은 “샤반이 매우 조용하고 착한 친구”라며 ‘키 작은 전사’라고 부른다고 했다. 샤반에게 “키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웃기만 했다. 165cm도 안 되어 보였지만 그는 다부졌다. 옆에 있던 한 병사는 샤반과 동료들이 노획한 카다피의 권총을 보여줬다.

샤반은 “우연하게 카다피를 먼저 잡게 된 것이다. 현장에서 몸 바쳐 싸운 전우들이 많이 있다”며 “이제 리비아는 새로운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수르트의 여단 사령관인 하마드 머프티 알리(28)는 한 이탈리아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카다피가 배수구에 숨어 있다 끌려 나온 뒤 (반군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면서 “카다피가 목숨을 살려준다면 금과 현금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알리는 “그러자 누군가가 카다피를 향해 ‘돈에 대해 말하지 말고 무슬림으로서 죽기 전에 신에게 몸을 맡기겠다는 기도를 해야 한다’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도 카다피는 수많은 금과 현금을 줄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주장했다.

미스라타=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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