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를 놓고 크게 술렁였다. 당장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일부 의원은 당 체제 개편이 불가피하다며 당 해체 수준의 극약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우선 홍준표 대표 체제가 존폐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 재·보선 패배 때마다 당 지도부가 총사퇴를 하고 쇄신운동을 벌인 만큼 이번에도 성난 민심을 재확인한 의원들은 당 지도부의 사퇴에 따른 당 체제 정비를 요구할 태세다. 한 초선 의원은 “공천 실패와 선거 패배에 당 대표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내년 총선에 대비할 수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홍 대표는 기초단체장 선거 승리를 근거로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며 사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쳐 당 내부가 지도부 책임론을 놓고 한바탕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친박(친박근혜)계와 소장그룹은 홍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단합해 쇄신해 나가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지난 4·27 재·보선 이후 비주류로 몰락한 친이(친이명박)계가 당권 장악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또한 당 대표가 될 만한 내부 인물이 없다는 대안 부재론이 설득력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핵심 당직자는 “내년 총선을 앞둔 의원들이 이미 공천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상황”이라며 “지도부 교체를 원하지 않는 기류가 만만치 않아 지도부 사퇴론이 동력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당 쇄신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당이 총선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로 조기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당 지도부가 총사퇴한 뒤 여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를 전면에 내세워 선대위원장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한 소장파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 패배의 후폭풍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박 전 대표를 조기 등판시키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홍 대표 체제를 유지하며 박 전 대표 중심의 선대위를 구성하는 투톱 체제 방안도 거론된다.
초·재선 의원 중심의 당 지도부 구성론도 거론된다.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당의 노쇠한 이미지를 쇄신하고 젊은층과 소통할 수 있는 참신한 인물을 내세워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초선 의원은 “당에서는 매번 쇄신을 외쳤지만 제대로 실천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공천개혁에 따른 대규모 인재 영입과 당청 관계의 재정립, 서민정책 개발 등도 쇄신책으로 나온다. 매번 소장파들이 주장한 내용이지만 이번에는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논리다. 우선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청와대와 선을 명확히 긋고 당이 국정운영을 주도해야 민심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현역 의원들이 공천 받기를 포기할 각오로 젊고 유능한 인사를 대폭 영입해야 당의 체질이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당장 27일 한나라당 초선 의원 모임인 민본21의 주례회동에서 선거 패배에 따른 다양한 대책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홍 대표는 27일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최고위원 긴급 조찬회동을 소집하기로 했다. ○ 민주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니다”
26일 오후 8시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 선거상황실. 야권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큰 차이로 우세를 보인다는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보도되자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 정동영 박주선 조배숙 최고위원 등 지도부를 비롯한 의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파이팅” “최고” 등을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는 분위기다.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니다”란 착잡한 반응이 대부분이다. 서울시장 후보는 내지도 못했고 전국 11개 지역에서 치러진 기초 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호남 2곳(남원, 순창)만을 건졌다. 한 3선 의원은 “박 후보가 민주당 덕분에 승리했다고 누가 평가하겠나. 결국 제1야당인 민주당이 시민세력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며 “‘호남 자민련’이라고 비판 받아도 부정할 수가 없게 됐다”고 했다.
사실 민주당 내에서는 3일 야권통합 경선에서 박 후보가 선출된 이후 공공연하게 “서울시장 선거는 이겨도 문제, 져도 문제”라는 말이 돌았다. 심지어는 “진실로 민주당만을 생각한다면 이기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거나 “서울시장 선거는 작은 선거다. 한나라당이 이겨도 민주당이 과반을 장악한 시의회가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질 경우 일시적인 무기력증에 빠질 수 있겠지만 거꾸로 “역시 한나라당에 맞서기 위해서는 민주당밖에 없구나”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큰 판인 내년 총선과 대선에선 유리한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얘기들이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야권통합 논의의 주도권이 민주당이 아닌 ‘혁신과 통합’ 등 당 밖의 세력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를 기점으로 원심력이 크게 커지면서 당 밖의 제3세력을 중심으로 정계개편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며 “상대적으로 민주당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야권통합과 별개의 제3세력이 등장할 가능성도 대두된다. 각 정파들을 해체하고 동등한 자격에서 신당을 창당하자는 논의가 전개될 수 있고, 이 경우 분당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총선 국면에서 민주당과 시민세력 간 주도권 다툼을 예상하는 시각도 있다. 한 핵심 당직자는 “당을 지키기 위해서는 박 후보를 도운 시민사회세력을 ‘외부 수혈’이란 이름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며 “당장 1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지명직 최고위원을 시민사회단체 몫으로 배정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 후보의 승리는 야권 단일화 시도 이후 최대의 성과물인 만큼 내년 총선, 대선에서 야권 단일화, 야권연대 논의가 한층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는 점도 민주당으로서는 고민거리다. 한 호남 의원은 “민주당이 기득권을 가진 지역이 호남 아니냐. 내년 총선 때 호남의 후보직을 내놓으라는 압력이 온갖 군데에서 나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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