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상황의 변화와 대북한 정책을 위한 한미공조 기회
한미안보연구회-세종연구소 등 공동주최
《 북한이 후계 승계 과정의 혼란과 극심한 경제난으로 붕괴 위기에 직면하면서 그 탈출구로 대남 무력도발을 감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북한이 ‘강성대국 진입의 해’로 선포한 내년은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안보지형에 소용돌이가 몰아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런 북한의 격변기적 상황을 앞두고 한국과 미국은 어떤 공조 방안을 강구해야 할까. 한미안보연구회(공동회장 김재창 예비역 대장, 존 틸럴리 전 한미연합사령관)는 27, 28일 서울 용산구 캐피탈호텔에서 ‘북한 상황의 변화와 대북한 정책을 위한 한미공조 기회’를 주제로 국제 안보 학술대회를 열어 해법을 모색했다. 이번 회의는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미국국제한국학회,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세종연구소, 반도에어에이전시가 공동 주최했다. 》 ○ 북한의 비대칭 군사위협
28일 ‘북한 상황의 변화와 대북한 정책을 위한 한미공조 기회’를 주제로 열린 국제 안보 학술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태준 중앙대 교수, 로버트 콜린스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초빙연구위원, 임용순 성균관대 교수, 양운철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폴 클라크 미국 해군대학원 교수, 이정민 연세대 교수.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패널들은 북한의 비대칭전력이 유사시 한국에 치명적 위협을 안겨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루스 벡톨 미국 앤젤로주립대 교수는 “한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북한의 3대 비대칭무기는 장사정포와 탄도미사일, 특수부대”라며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5km 이내의 견고한 진지에 배치한 250∼400문의 장사정포로 서울과 주변지역을 기습 포격할 경우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떠오른 최대 위협으로는 서해 5도에서 불과 50여 km 떨어진 황해도 고암포에 건설 중인 북한의 새 공기부양정 정박기지를 꼽았다.
벡톨 교수는 “북한 특수부대는 AN-2기와 공기부양정, 잠수정, DMZ 인근 땅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침투할 수 있다”며 “북한이 2004∼2007년 DMZ와 그 인근에 병력 2000여 명분의 무기와 장비를 비축할 벙커 800여 개를 지었다는 탈북자의 증언도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은 일본과 괌을 사정권에 둔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고 최근엔 신형 전차와 지대공미사일을 개발 배치해 한미 연합군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북한이 연료난과 식량난을 겪고 있지만 전쟁에 동원될 군대는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토론에 나선 정일화 대진대 초빙교수는 “북한의 경제난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비대칭전력을 계속 확충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핵문제 등 모든 협상에서 대화와 도발을 반복하는 ‘겉과 속이 다른 협상전략(Digging Tunnel Strategy·땅굴파기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며 한미 양국이 북한의 의도와 목적을 철저히 파악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협상 목적은 남한과의 체제대결에서 이겨 김씨 독재체제의 범죄를 정당화하고, 한미동맹을 약화시켜 휴전협정을 폐기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라며 “북한은 앞으로도 이런 협상전략을 고수할 것이므로 북한의 의도에 어떤 환상도 금물”이라고 말했다.
○ 북-중 관계와 북-러 관계
패널들은 중국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에도 북한을 지지하고 경제지원을 강화하고, 러시아도 미국을 견제하고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만큼 한미 대북정책 공조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든 창 미국 포브스지 칼럼니스트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결정 과정에 중국 군부가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며 “북-중 군부 간 끈끈한 결속과 북한의 중국 경제 예속 현상이 계속되는 한 양국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중국이 북한을 버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북한 경제를 장악하기 위해 두만강 인근지역 등에 대규모 대북 투자를 하고, 북-중 교역규모도 매년 급증해 김정일 사후 북한은 중국에 흡수돼 동북 4성이 될 수 있다”며 “한국이 주적인 북한과 가장 절친한 국가(중국)에 의존성을 높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멜 거토프 미국 포틀랜드주립대 교수는 “중국 군부도 개혁개방 이후 (한반도 정책에 대한 입장이) 달라졌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안정을 위한 두 개의 한반도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며 “이런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은 경제포용정책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러 관계에 대해 이지수 명지대 교수는 “북한과 러시아는 대미관계에서 상호 보완적이어서 양국 관계가 더 가까워지고 있다”며 “북한은 러시아에서 체제유지를 위한 지원을 얻고 러시아는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영향을 약화시키려 북한을 활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정은숙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러시아의 대북 영향력은 중국보다 약하고 도전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최근 러시아가 6자회담의 적극적 참여와 함께 남-북-러 가스관 연결 등을 통해 영향력 증대를 꾀하지만 이른 시일 안으론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 북한은 협상 가능한 대상인가
이번 회의에선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느냐, 북한을 과연 협상 가능한 대상으로 볼 수 있느냐를 놓고 참석자들 간에 일대 설전이 벌어졌다.
제임스 매트레이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는 군축과 핵 폐기가 아닌 북한 정권의 붕괴였다”며 “부시 행정부의 안보정책을 주도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강경일변도 대북정책으로 북한은 결국 냉전과 대결을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핵문제를 비롯한 북한 사태와 한반도 안보상황이 이처럼 악화된 것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 노력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송대성 세종연구소장은 “북한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고, 협상이 가능한 대상도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는 “북한과 합의나 협정을 맺을 순 있었지만 북한은 대부분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북한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핵을 폐기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최우선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도 “소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채 핵개발을 고집하는 북한 정권과 대화로 핵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며 “더욱이 중국이 대미 견제를 위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높여 갈수록 협상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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