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3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에 대해 “이번에 처리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최경환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여당이 한미 FTA 비준안을 11월에 처리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또 그는 “늦어질수록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야당 반대로 처리가 안 되고 있는데 한나라당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계속 노력하고 있잖아요”라며 원내 지도부의 협상 노력에 기대를 걸었다. 한미 FTA 비준안을 강행처리할 경우 표결에 참여할 것인지에 대해선 “여야가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니까 더 지켜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국회는 이날도 한미 FTA 비준안 처리 문제에 대해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여야의 대립이 격화되고 국회의장 직권상정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미 FTA 문제에 대한 박 전 대표의 공개 언급은 여권의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는 한미 FTA 비준안 처리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에 대해서도 “우리 통상 협정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국제적 통상협정에서 일반적인 제도이고, 표준약관같이 거의 모든 협정에 다 들어있는 제도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나라이고 세계 속의 통상 모범국으로 선진국을 지향하는 나라다. ISD에 휘말릴 정도로
편파적이거나 독소적인 것을 우리가 도입했겠느냐”며 “만약 그런 편파적인 것을 갖고 있다면 ISD가 없더라도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국제기구에서 시정을 요구할 것이고 외국의 보복 조치로 시정되고 말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가 18대
국회 들어 여야가 치열하게 맞붙은 쟁점과 관련해 여권의 손을 곧바로 들어준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그는 줄곧 정국 현안에 대한
발언을 아꼈고, 굳이 발언을 할 경우에도 국회 처리나 정책 결정이 임박해서야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여권은 박 전 대표를 설득하기
위해 막판까지 허둥댔다.
박 전 대표는 2008년 12월 미디어관계법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가 극심하게 대치를 할
때도 한 달쯤 뒤에야 “한나라당이 내놓은 법안들이 국민에게 오히려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며 여권에 제동을 걸었다. 결국
미디어법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고, 박 전 대표가 “이 정도면 국민도 공감해줄 것”(2009년 7월 22일)이라고 밝힌 뒤에야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헌 문제와 과학비즈니스벨트 등 굵직한 이슈가 불거진 올해 초에도 그는 한 달 이상 침묵했다.
오히려 야당이 박 전 대표를 겨냥해 “소신과 입장을 분명히 해 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등 현안에 대해서도 상당 기간 ‘침묵기간’을 거쳤다.
박 전 대표가 이날 한미 FTA 문제에 대해
전격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은 FTA 자체에 대한 소신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폭로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는 박
전 대표가 2007년 6월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협상이 막 시작된 한미 FTA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의 많은 조치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한미 FTA 추진에 대해서는 전면적이고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내년 총선과 대통령선거 등 정치 일정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친박(박근혜)계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미 FTA의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한미 FTA 비준안을 한나라당이 단독 처리할 경우 예산안 처리는 무조건 합의 처리해야 한다”며 “FTA 단독
처리 후 어느 정도 여야 냉각기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벌기 위해서도 빨리 처리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 이미지가 내년 총선까지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친박계는 한미 FTA 비준안 문제를 19대 국회나 다음 정부로 넘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도 하고 있다.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12월로 넘어가면 내년도 예산안 처리와 농촌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의 ‘지역구 눈치 보기’로 점점 처리가
어려워진다”면서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제1당 자리를 내줄 경우 한미 FTA 자체가 아예 물 건너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인사는 “한미 FTA는 반드시 이번 정부에서 털고 가야 한다”며 “다음 정부는 통과된 한미 FTA를 바탕으로 경제 도약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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