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중국으로 탈북하는 주민들을 현장에서 사살하기 시작했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북한은 또 북-중 국경경비대를 남북 분계선을 지키는 최정예 부대와 같은 급으로 격상하고 4중, 5중의 경계망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도 북-중 국경에 물샐틈없는 철조망을 설치하고 있으며 북한에 휴대전화 전파탐지기 등 각종 탈북 방지 장비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중국으로의 탈북 통로가 꽁꽁 막히며 ‘수용소 국가 북한’은 이제 실제로 거대한 철조망에 갇힌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 목격된 탈북자 사살 장면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회장은 6일 “국내 모 방송사와 동행해 20여 일간 북-중 국경 취재를 하던 중 지난달 22일 오후 4시경 40대 탈북남성이 사살되는 장면을 우연히 촬영했다”고 말했다. 사살된 남성은 양강도 혜산 부근에서 압록강을 건너 중국 측 도로에 올라섰다가 강 건너편 북한 경비병들이 쏜 총에 맞았다. 김 회장은 “총소리를 듣고 중국 공안 다섯 명이 나타나 총에 맞아 꿈틀대는 남성을 촬영하거나 지켜보지 못하도록 둘러쌌다”며 “총에 맞은 남성은 공안들이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둬 수분 내에 숨을 거뒀다”고 증언했다.
강을 건너는 도중이 아닌 중국 땅에 도착한 탈북자를 총으로 사살했다는 사실은 북한의 탈북자 대응이 크게 강경해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북한은 지금까지 군사분계선에서는 경비병들에게 현장 사살 권한을 줬지만 중국으로 도망치는 탈북자에게는 총을 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으로 가는 탈북자도 한국으로 도망치는 조국 배반자로 간주해 즉결 사살하라는 내부 지시가 내려왔다고 대북 소식통들이 전했다. 또 탈북자를 사살한 군인은 공훈을 세운 것으로 인정해 표창을 받고 있다고 전해졌다.
한 북한 소식통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탈북하다 체포된 사람도 마구 시범총살하는 분위기이다. 살다 살다 이렇게 공포스럽기는 처음이다. 절대 사람을 보내지도 말고 당분간 연락도 자제하자”고 말했다. 이 소식통과의 통화도 매우 어렵게 이뤄졌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전화가 오면 요금문제 때문에 남쪽에서 그 번호로 다시 걸어 통화를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북쪽으로 전화를 거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북한이 최근 국경 곳곳에 수신전파차단기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 탈북 차단은 김정은의 역점 사업
북한 주민들이 탈북을 위해 국경에 접근하는 것도 이전에 비해 몇 배로 어려워졌다. 최근 국경으로 가는 길목에는 단속 초소들이 크게 늘어났다. 초소 관할도 보위부, 보위사령부, 보안서 등으로 다양해져 탈북자들이 특정 초소를 돈으로 매수해 통과해도 다른 초소에서 적발될 확률이 높아졌다. 지난달 말 통화한 한 북한 주민은 “이제는 누가 어디로 가기 위해 몇 시 몇 분에 어디를 통과했다는 사실까지 다 기록된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또 최근 북-중 국경경비대를 남북분계선을 지키는 민경부대와 같은 등급으로 대우해주겠다는 지시를 내리고, 국경경비대의 군복도 특수부대에만 지급하는 얼룩무늬 위장복으로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경부대는 출신성분과 신체조건 등을 엄격히 가려 뽑는 최정예 부대로 군 장성과 비행기 조종사와 같은 보급품을 받으며 제대한 뒤에는 무조건 노동당에 입당시키고 공산대학 졸업증을 준다.
북한은 올해 국경 일대에서 수차례 집중 검열을 벌여 탈북을 방조하거나 해외 인사와 연락해온 간부들과 군인들을 체포해 처벌했다. 탈북을 막기 위한 회유와 처벌 수준 모두 이전보다 훨씬 강도가 높아졌다.
북한의 유례없는 국경봉쇄는 김정은이 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아버지에게서 내치(內治)를 넘겨받으면서 탈북을 무조건 근절하겠다고 맹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현재 그가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이 바로 국경봉쇄다”고 전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북한 내부의 민심이 매우 악화된 것과 무관치 않다.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는데 김정은 등장 후 세대교체 명목으로 기존 간부들을 마구 숙청해 주민들은 물론 간부들 사이에서도 반김정은 여론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삼엄한 감시망 속에서 반항할 수도 없어 주민들은 희망 없는 북한을 떠나는 것을 최선의 탈출구로 여기고 있다. 북한에 한류 붐이 형성돼 주민들이 발전된 남한 현실을 잘 알게 된 것도 탈북을 이끄는 동기이다. 1990년대 중반 대량 탈북은 경제난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체제 반항적 대량 탈북이 벌어질 모든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 탈북 봉쇄 도와주는 중국
중국은 북한의 탈북자 봉쇄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중국의 협조는 올 2월 멍젠주(孟建柱) 중국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김정은 부자를 만난 뒤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철조망을 칠 경제적 여력조차 없는 북한을 대신해 중국이 북-중 국경 일대에 철조망을 쳐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2008년경 압록강 하류 단둥(丹東) 인근에만 철조망을 쳤지만 올 들어 북-중 국경 전체를 철조망으로 봉쇄한다는 목표로 철조망 공사를 본격 재개했다. 이미 허룽(和龍) 싼허(三合) 투먼(圖們) 등 주요 탈북 통로에 철조망 설치가 끝났고 현재는 카이산툰(開山屯)에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2∼3m 높이의 철조망은 밑을 파지 못하도록 콘크리트로 다졌다. 또 철조망 군데군데 폐쇄회로(CC)TV도 설치돼 있다.
중국은 순찰차량, 휴대전화 전파탐지기, 전파장애기 등 각종 탈북방지 장비는 물론 비상사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시위 진압용 최루탄과 헬멧 등도 지원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 보위부가 요청하는 휴대전화 통화기록도 넘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월에는 북한 혜산 맞은편 창바이(長白) 현에서 한족 두 명이 북한 주민 인신매매 혐의로 총살되기도 했다. 중국이 탈북과 관계된 자국 주민을 총살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과 중국 쪽 탈북 통로가 이처럼 모두 막혀가고 있어 앞으로 북한 주민들은 바다를 통한 필사의 탈북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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