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8일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채 기 싸움을 이어갔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은 한미 FTA와 관련해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괴담을 유포하는 사람을 구속 수사하겠다’는 검찰 발표에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저해할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비판하며 ‘적전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 한나라 “검찰 나서면 되레 부작용”
황영철 한나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원내대책회의를 마친 뒤 “‘검찰이 나서면 국익을 위한 한미 FTA 토론을 억압할 수 있다’는 의견을 검찰에 전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정부가 SNS상의 ‘한미 FTA 괴담’과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집권여당은 발을 빼겠다는 태도다.
원내대책회의에서 검찰의 방침을 처음 문제 삼은 사람은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태근 의원이다. 이에 다른 참석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양새만 연출된다” “여당이 한미 FTA 비준안을 강행 처리하려고 검찰과 손을 잡은 것처럼 비칠 수 있다”며 동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아무리 당청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해도 집 안에서 총질 하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한 당직자는 “FTA 반대 움직임이 ‘제2 촛불’로 번지는 상황에서 집권여당이 FTA 괴담 대응에 정부와 손발을 맞추기는커녕 파열음을 내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말했다. ○ “FTA 처리 없다” 되풀이한 여당
이날 아침 한나라당 소속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이 오후에 외통위 전체회의를 열어 비준안 처리를 시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여야 의원들은 ‘5분 대기’ 태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남 위원장은 오후 5시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9일째 점거 중인 외통위 회의실이 아닌 정무위 소회의실에서였다. 그는 “9일에도 한미 FTA 비준안을 처리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처리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말을 바꾸는 등 복잡한 심경을 내비치기도 했다.
여야 지도부는 거친 입담을 주고받았다.
한나라당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관련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어 연구할 정도로 한미 FTA를 치밀하게 검토했다”며 “노 전 대통령만큼은 욕되게 하지 말라”고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원내대표 등을 겨냥했다.
민주당은 김효재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전날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야권이 FTA를 반미 선동의 도구로 삼고 있다’고 비판한 대목을 문제 삼았다. 김 원내대표는 “FTA 반대 세력을 반미 친북주의자로 몰아붙이며 전형적인 매카시즘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여기에는 한나라당 남 위원장도 가세했다. 그는 “(김 정무수석의 편지나 검찰의 발표는) 적절치 않고 비준동의안 처리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오히려 야당 의원들을 자극해 쪽박을 깨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비준안 처리 디데이로 알려진 10일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어서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 가능성을 놓고 여러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수능일에 강행 처리할 경우 수능 이슈에 가려져 비판을 덜 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유권자들의 정치적 혐오를 더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 민주당의 ‘ISD 절충안’ 결실 볼까
민주당 내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의 핵심 쟁점인 ISD 문제에 대해 절충안이 제시돼 협상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절충안은 ‘FTA 비준안이 발효되는 즉시 ISD 존치 여부에 대한 협상을 시작한다는 약속을 미국에서 받아오면 비준안 처리를 물리적으로 저지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민주당 의원 87명 가운데 김진표 원내대표를 포함해 강봉균 김성곤 김동철 의원 등 45명이 구두 또는 서면으로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은 이 같은 움직임을 일단 지켜보겠다는 태도지만 민주당이 이 절충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제안해 올 경우 긍정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절충안에 부정적이어서 당론 채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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