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국회방문 연기 ‘우여곡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1일 11시 44분


긴박했던 청와대..`명분쌓기' 비판 의식해 보안유지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 계획이 11일 발표된 지 3시간 만에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대통령의 국회행(行)이 공식 발표된 시각은 이날 오전 8시20분.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은 예고 없이 기자실을 찾아 "대통령은 설득을 위해서라면 낮은 자세로 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면서 이 같은 방침을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참모진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방문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통과를 직접 설득하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이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가더라도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처리된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야당으로부터는 '명분쌓기용'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차례 내부 회의를 거쳐 결국 이틀 전인 9일 국회에 가기로 결론을 내리고, 10일에는 여야 지도부와의 면담 추진을 위해 국회의장실과 일정을 조율하는 등 물밑에서 긴박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런 사실이 외부에 유출될 경우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어 이 대통령은 "모양내기로 비쳐서는 절대 곤란하다"고 지시했고, 참모진은 언론에 철저히 함구하며 보안을 유지했다.

이 대통령은 11일 이른 아침까지 민주당이 면담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보고를 받자 가서 기다리는 한이 있더라도 국회를 방문하기로 하고 일정을 공개한 것이다.

빈손으로 돌아올 경우 국가원수로서 체면을 구길 수도 있지만 그만큼 비준안 통과가 절박하다는 심경을 나타내고 막판 설득을 위한 것이라고 한 청와대 참모는 설명했다.

그러자 국회가 다급해졌다.

곧바로 박희태 국회의장이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와 장시간 전화 통화를 했다. 여기서 김 원내대표는 15일 방문할 경우 면담할 수 있다고 알렸고, 국회의장실은 곧바로 청와대에 이런 사실을 전했다.

그 사이 한나라당 역시 야당과 막판 협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청와대에 방문 연기를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오전 발표를 3시간 만인 11시30분 공식 철회하고, 이 대통령이 주말 예정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날인 15일로 방문을 연기하기로 했다.

김 수석은 "대통령은 야당을 설득하기로 한 만큼 가는 게 맞지 않느냐는 그런 강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야당이 간곡하게 요청을 하는데 받아들이는 게 맞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5일 민주당과의 면담이 이뤄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민주당이 다른 날을 제시하면서 조건에 `상황 변화'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부에서는 이 대통령이 APEC 회의에 참석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부분의 재협상 약속을 받아와야 한다고 하고 있다. 청와대로서는 외교 관례상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붙인 것이다.

한편,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에는 지난달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당시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나는 반대표를 던졌다"면서도 FTA가 통과된 것을 축하해주는 것을 보고 이 대통령은 의회 민주주의의 전형을 느끼고, 어렵더라도 국회 설득에 나서야겠다는 뜻을 강하게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난 2004년 1월8일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 처리에 대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 박관용 국회의장과 한나라당 최병렬, 민주당 조순형 대표, 열린우리당 김원기(金元基) 공동의장과 만난 전례가 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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