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공개석상에서 어떻게 내부에다 대고 비판을 하나. 본인은 출마도 안 할 거면서 그런 비판을 하면 다른 의원들 선거에 어떤 영향을 주겠나.”
한나라당 전략기획본부장인 차명진 의원은 10일 최고위원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자마자 격앙된 목소리로 이같이 원희룡 최고위원을 비판했다. 홍보기획본부장인 최구식 의원도 원 최고위원에게 “신문 기사를 확인도 하지 않고 발언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가세했다.
앞서 진행된 공개회의에서 원 최고위원은 장제원 의원이 8일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과 관련해 “정확한 내용은 보지 못했지만 네티즌(누리꾼)들이 ‘한나라당이 인터넷을 통한 소통 차단에 주력한다’고 비난한다”며 “사실이라면 당내 토론을 통해 오해를 사지 않도록 철회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포털이나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KT SKT 등 통신사들이 제공하는 통신망으로 데이터 용량 제한 없이 콘텐츠를 소비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불법 콘텐츠를 제한하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SNS와 직접 관련은 없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비용을 내지 않고 통신망을 이용하고 있는 콘텐츠 생산업체의 과도한 콘텐츠 유통을 합리화하자는 법”이라고 평가했다. 법안 발의에는 장 의원뿐만 아니라 민주당 장세환 의원 등 모두 11명이 참여했다.
그럼에도 SNS상에서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SNS에 피해를 본 한나라당이 SNS 차단법 마련에 나섰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여야 의원들은 11일 법안을 철회했다. 10·26 선거 이후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한 SNS의 명암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 역(逆)매카시즘 유령
서울시장 선거에서 SNS는 여론을 주도하며 정당 조직을 무력화하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은 막말과 몸싸움을 되풀이하는 기성 정치권의 구태에 대한 분노와 민심을 대변하지 못하고 당파적 이익만 추구하는 정당정치에 대한 경고가 SNS를 통해 표출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 SNS는 대화와 협상이란 정치의 본질에 입각해 갈등을 해결해보겠다는 민주당 협상파 의원들에 대한 마녀사냥의 장(場)으로 변질되고 있다. SNS에서 누리꾼들은 이들을 ‘한미 FTA 찬성론자’로 낙인찍어 “매국노”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고 있다. 1950년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은 매카시즘처럼 ‘역(逆)매카시즘’의 유령이 SNS를 지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내 강경파들을 향해 “(여당에) 짓밟히는 쇼를 하자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신(新)을사오적에 추가해야 한다” “민주당이 딴나라(한나라당을 속되게 이르는 말) 이중대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 “국가를 팔아치우려는 역적과 내통하고 협조한 사람”이라는 막말까지 퍼부어졌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절충안에 동의했거나 ‘대화와 타협으로 한미 FTA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힌 강봉균 김동철 김성곤 정장선 의원 등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의 X맨(팀을 해롭게 하는 사람이란 뜻)” “한나라당 스파이” “민주당에서 제명해야 한다” “국회의원 배지를 회수하겠다” “한나라당으로 가라”는 위협이 잇따르고 있다.
○ “여론을 빙자한 폭력”
전문가들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단으로 주목받았던 SNS의 어두운 측면이 극명하게 드러난 모습이라고 지적한다. 견해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는 있지만 그 견해를 성찰하는 기능이 뒷받침되질 않아 막말과 위협, 언어폭력 등 구태정치의 면모가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트위터리안들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명예훼손에 해당할 정도의 위협을 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도 많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여론을 빙자한 강압과 폭력”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역매카시즘을 주도하는 주장들이 사실관계와 이성이 아닌 감성에 치우쳐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는 올 1월 펴낸 자신의 책 ‘정치의 발견’에서 “정치적 이성을 갖추지 못한 진보는 그렇지 못한 보수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SNS에서 역매카시즘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다수의 여론을 대변하는지도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 교수는 “자신들의 주장을 ‘다수의 깨어 있는 시민의 목소리’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소수의 트위터리안이 집중적으로 올리는 글이 리트윗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했다. 동아일보와 데이터 분석업체인 SAS코리아가 지난달 3∼25일 조사한 결과 서울시장 선거를 좌우한 SNS 여론은 트위터 전체 가입자 400만 명의 0.094%에 해당하는 3763명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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